온전한 십일조를 준비하라.    (말3:7-12)

성경에는 3가지 중요한 열쇠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태복음 16:19절에 기록된 천국 열쇠입니다. 이는 올바른 신앙고백을 뜻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태복음 7:7에 기록된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이는 기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말라기 3:10절에 기록된 축복의 열쇠입니다. 이는 십일조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3가지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장에는 원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그 원리와 원칙을 떠나서는 온전한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국민이라면 국법을 준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세법을 통하여 적정 이윤에 대한 정직한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탈세자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정년이 된 청년이라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피자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차량을 운행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교통법규를 준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운전하게 되면 교통위반으로 범칙금은 물론 때로는 면허취소까지 당하게 됩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하나님은 선민(選民)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주셔서 지키게 하셨고, 그렇지 않을 때 징치(懲治)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준엄하게 명령된 것이 십계명이었고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법도와 계명을 주셔서 지키게 하시는 것은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하시기 위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또 하나의 제재로 불편스럽게 여겨 어떻게 하든지 그 규례를 지키지 않으려 하고 그럼으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는 생활로 스스로 저주를 부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해하지 못할 또 하나의 현실입니다.

오늘은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 가운데 물질 생활의 축복이 약속된 십일조를 온전하게 준비하는 믿음의 생활에 관한 말씀을 받고자 합니다.

1. 십일조의 용어 이해

십일조의 히브리어는 '마아세르'인데 이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창세기 14:20에 처음 나옵니다.
그리고 창세기 28:22절의 야곱이 서원한 십일조는 '아사르'로 표기되었는데 그 내용은 야곱이 간구한대로 축복해 달라는 간구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이 두 단어, 즉 '마아세르'와 '아사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마땅한 의무이며 그로 인하여 축복을 여는 열쇠이며 형통한 삶의 안내자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사용된 십일조는 대체로 '아포데카토오오', '데카토오', '데카테에'의 세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필수적인 신앙 의무이며 율법 이전부터 은혜에 따라 행해진 감사의 표현입니다.

2. 성경에 나타난 십일조

1) 모세 이전 시대의 십일조
창세기 14장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으로서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이 아론의 제사장 직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히브리서 7:1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8장의 야곱의 십일조 서원이 있습니다.

2) 모세 시대의 십일조
모세 시대는 율법으로 규정된 십일조로서 3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전에서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이며(민18:21), 둘째는 성전에서의 축제 및 관리를 위한 십일조이며(신14:22-27), 셋째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매 3년마다 드려지는 십일조입니다.(신14:28-29)

3) 왕정시대의 십일조
곡식, 포도, 가축의 십의 일을 징수하는 것은 왕의 특권이었고 이스라엘은 십일조를 이행하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4) 포로기 및 포로 후기 시대의 십일조
정상적인 생활에서의 이스라엘은 역시 십일조 생활을 당연시했고 배교(背敎)시대에는 십일조가 무시된 것이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5) 신약시대의 십일조
대제사장들의 탐욕이 일반 제사장들을 핍절하게 만들어 버리게 되자 십일조는 자원하는 기쁨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강제 징수가 시작되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징수하는 것은 랍비들의 규정이 되었고 이는 성경의 본래 십일조 취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6) 초대교회 시대의 십일조
초대교회 및 몇 세기까지는 제도적인 십일조 드림에 의한 성직자 지원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에 유대교 회당의 패턴을 따라 십일조가 인정되었습니다.

7) 현대교회의 십일조
성경의 본래 뜻이 전도(顚倒)되어 감사와 축복의 기쁨으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운영을 위한 한 방법으로 강조되면서 복음적인 의무수행보다는 율법적인 의무수행이 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3. 십일조의 진리

오늘 본문의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기다리는 메시아는 오시지 않고 내적으로는 천재 지변으로 경제가 어렵게 된 상황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은 정신이 부패해 지기 시작했고 영적 생활을 타락하기 시작했으며 음행과 착취를 일삼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으며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데도 그것이 잘못된 삶인 줄 모르면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할 때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영혼을 각성시키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 안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촉구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 또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삶의 내용의 첫째가 도적질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온전하게 드리는 것이라고 깨우쳤습니다.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가 외친 십일조의 진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면 삶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즉 마땅히 주인이신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정 구원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한다면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삶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삶의 표현이 삶의 모든 내용을 하나님의 창고에 저축하는 것인데 그 첫 번째 표현된 삶이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이와 같은 삶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자녀에게는 반드시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모든 것으로 축복을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삶의 자리를 저주로 바꾸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제적 축복 뿐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넉넉케 하시는 하나님께 더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하여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온전한 봉헌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정리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거할 수 있는 몇 가지 비결이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출애굽기 20:8-11절 내용으로서 이미 여러분에게 설교했던 주일을 성수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늘 본문의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에베소서 6:1-3절의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며 따라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사도행전 20:35절의 모든 가진 것으로 선용하는 삶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오직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삶의 내용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4. 온전한 십일조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십일조가 일상생활에 얼마나 축복된 것인가를 말씀을 통하여 깨달았습니다. 의무 수행으로서 십일조 생활을 하게 되면 무엇인지 모르게 불편스럽지만 감사와 축복의 개념으로 십일조 생활을 하게 되면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근대사에 십일조와 축복의 대명사로 불리어지는 사람이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입니다.
어려서부터 예수를 잘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겼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십일조 생활이었는데 8세때 자기가 얻은 20센트 중 2센트를 십일조로 처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록펠러는 초등학교를 졸업후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남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십일조를 꼭꼭 하나님께 드렸으며 그후 1882년 석유 트러스트를 결성했을 때 부호가 되어서도 십일조는 꼭꼭 드리게 되어 세계에서 가장 십일조를 많이 드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일생의 고백은 한결 같았는데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내용의 고백이었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가난하게 사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을 축복해 주신다고 성경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이제 우리도 보다 아름답고 축복된 삶을 위하여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인가? 순이익의 십분의 일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는 반복된 것이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한마디뿐입니다.
율법적인 개념으로 십일조를 하려 하지 말고 복음적인 십일조를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가 소득인가? 아니면 순 수익인가?를 헤아리면 하나님도 주실 때 헤아린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분의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는 최소한의 상징적 표현일 뿐입니다. 마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는 것은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 보다 더 무서운 또 하나의 죄악입니다.
비단 물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 지혜, 시간, 재능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물질만의 십일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십일조를 드리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의 삶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제2의 복음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온전하게 준비하여 드리는 것은 십일조를 가지고 구제하고 선교하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하나님 앞에서 죄악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 식구들의 화합이 어려워 온전하게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형편이 되면 그것을 핑계로 삼지 말고 그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생활을 노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수학적인 10분의 1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은혜와 축복 받는 비결임을 확신하는 삶을 통하여 온전하게 준비하여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실업가 하이드씨는 맨소래담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경영하던 사업이 실패하고 창세기 28:22절을 읽다가 "내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중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라고 야곱처럼 서원하고 기도했습니다. 그후 친구의 권유로 고약인 맨소래담을 만들어 팔아 흥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성장하게 되면서 하이드씨는 10분의 8을 드리는 생활을 했으며 그럴 즈음 외국 선교사로 가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사업 수입의 10분의 1을 이곳 선교사업을 위하여 보내 주십시오"라는 전문을 받고 다시 10분의 1을 보내면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10분의 8을 바칠 때보다 10분의 9를 바칠 때 더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 간증이 바로 오늘 본문의 10절 말씀이 그대로 확인된 축복의 고백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21세기를 준비하는 교회로서 우리는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들을 점검하면서 1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즈음 텔레비전 광고 가운데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내용이 종종 방영되는 것을 봅니다. 신앙생활은 말할 것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헌금시간에 헌금을 하지 않고 장난치고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아이가 자라서 집사가 되고 항존 직분자가 될지라도 온전한 봉헌 생활을 절대로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훈련받지 않고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십일조 도적질하고 감사할 줄 모르며 스스로 영육간에 점점 사막화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기도 시간에 눈을 뜨고 장난을 치는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교회 내외적으로 사기꾼이 되기 쉽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훈련이 어릴 때부터 되어지지 않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신앙생활이 절대 경건하고 아름답지 못한 영적 패륜의 주인공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야 합니다.
거짓된 삶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것이 평안과 질서와 축복의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수행하여야 할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바라는 것은 자기 기만이며 하나님을 향한 거짓 신앙입니다.
거짓된 삶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하나인 십일조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분명하게 약속하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의 복을 받아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 믿는 자의 참 모습을 만천하에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서임중 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