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9-13


이 시간에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문의 모범을 가르쳐주셨습니다.
1) 따라서 기도문은 가르칠 수도 있고 배워서 숙달 할 수도 있습니다(눅11:1-4).
2) 예수님 당시에는 이 기도문이 구전으로 전달되었지만 후시대 사람들에게는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전달되었기 때문에 오늘의 성도들은 비단 기도뿐만 아니라 모든 말씀을 성경에 나타난 글로 전달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 글로 전달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것임을 믿으셔서 듣는 것보다 보고 확인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셔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듣는 것보다 읽으므로 느끼는 감화가 더 큽니다.

3) 예수님은 이 기도문을 즉흥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즉흥적이란 뜻은 쉽게 발표하셨고, 누구나 쉽게 모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논리와 내용을 더 충실하게 나타내셨다면 내용이 더 많았을 것이고, 서민들이 쉽게 배워서 모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4) 기도는 과장이나 작태가 없이 자연적으로 진실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는 학문도 아니요, 웅변도 아니며, 꼭 논리가 맞아야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논리에 못 미치는 성도라도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논리적이면 더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믿음과 진실과 간절함만 있으면 하나님은 합당하게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5) 본문에서 예수님이 기도문을 교훈하신 동기는 전체적으로 충실한 기도문을 다 가르치시려 한 것이 아니고,

① 우선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시고(마6:5-8),

② 모든 백성들이 가장 쉽게 터득하여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을 말씀하시려는데 있었으므로 저희들이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셔야 할 것입니다.

6) 만일 이 기도문에 논리와 내용을 더 구비하여 가르치신다면, ① 감사하는 내용과, ② 영적축복을 더 자세히 구하는 내용이 포함되고, ③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단서까지 붙여주셨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은 것은 내용의 구비조건보다 쉽게 활용하기 좋게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이 기도문의 특징을 살피면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기도에 비할 때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뜻을 다 포함하였고, 극히 하나님 중심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2.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하셨으므로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셨습니다.

① 이 말씀은 기도의 대상을 성부하나님으로 호칭하라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다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기도할 때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게 되고(롬8:26),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쳐야 하므로(요16:24) 당연히 그 대상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②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의 천국보좌를 연상하신 것이요,(계 4:4)

③ 그 하나님을 “아버지여”라고 부르게 하신 것은 하나님과 기도자의 관계가 영적으로 부자관계에 있음을 믿음으로 시인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란 말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불신앙의 증거이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영의 아버지, 만물의 아버지, 양육의 아버지, 구원의 아버지로 믿기 때문에 그런 호칭을 할 수밖에 없고, 또 그 호칭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2) 기도의 내용에서 일곱 가지의 소원이 제시되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시면,

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성이 사람들로부터 크게 칭송되기를 바라는 목적의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성도들로부터만 칭송을 받게 됩니다. 불신자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오직 성도만이 하나님의 명성을 높여 드리려면 ㉠ 우선 성도 자신들이 거룩해져야 하고,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소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기 위함이며 또 말로만 구할 것이 아니라 성도 자신의 거룩한 생활을 통해서도 이루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원과 의무이행 그리고 목적이 포함되어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빌1:20).

②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것입니다(마6:33,막1:15). 그 말씀이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고”한 것입니다. 이 나라는 세상에 있는 나라로서 하나님의 통치가 지상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인데 여기서도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할 대상은 성도뿐이기 때문에 ㉠ 성도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잘 순종하게 하옵시고, ㉡ 또 많은 택한 백성들이 신앙에 들어와지기를 소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딤전2:4). 따라서 이 소원도 성도의 계명 실천과 전도사명의 실천을 촉구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 순종을 게을리 하거나 전도사명을 게을리 하면 안 될 기도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③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짐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마귀의 역사를 통제해 주실 것을 소원하는 기도입니다. 천국에는 마귀가 없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존재가 없지만 이 세상은 마귀의 역사가 허용된 곳이기 때문에(눅4:6) 마귀와 마귀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항상 거역하므로 훼방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하나님의 뜻이 잘 실현되려면 성도가 마귀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므로 여기에 연약한 성도를 도우사 거역하는 마귀의 역사를 통제해 주시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욥2:6).

④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물질을 구함에 있어서 가장 어려워진 상태에 있을 때 하루 소용되는 것을 구하라고 하시므로 “이틀이상 먹을 것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물질문제에 대하여 소극적이었습니다(잠30:8,9). 마6:30-34에 보시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키우신다”하셨고, “무엇을 먹을까???입을까 하지 말라” 하셨으며, 또 “내일 일을 내일 염려할 것이라”하신 말씀과 대조하면 이렇게 “일용할 양식만 구하는 것”이 꼭 맞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살면서 내일 일을 내일 염려하고, 하루하루 생활에 충실 할 수만 있다면 큰 믿음, 큰 평안, 큰 행복을 성취하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물에 욕심가진 저희들의 생활을 많이 반성하게 하시는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일 섭취할 영혼의 양식도 우선적으로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마4:4).

⑤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해줌 같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소원입니다. 이 용서는 구원받기 위한 전체적 죄책의 용서가 아니고 이미 의의 은총을 받고 사는 성도가 자주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징계아래 있는 상태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 성도가 이웃형제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도 역시 사랑의 차원에서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근본적인 죄에 대하여 용서받고 구원을 받은 저희들이니까 당연히 용서의 실천을 하면서 이웃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마 18:25-35). 또 죄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거기에 월권해서도 안 됩니다(롬12:19). 만일 저희들의 연속되는 범죄가 하나님의 징계로 이어진다면 저희들은 항상 매만 맞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징계를 간과해 달라”는 사정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빠져서는 안 될 기도의 내용입니다(시103:10,벧후3:9).

⑥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소원입니다. 이것은 “죄를 짓지 않도록 유혹을 이기게 해 달라”는 소원입니다(마26:41).눅22:21-22에 보시면 “사탄이 베드로의 믿음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밀 까부르듯 하는 것을 예수님이 그 믿음을 붙잡도록 기도해 주셨다”는 말씀이 있고, 또 롬8:26에서는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을 도우신다”고 하셨으므로 꼭 죄의 유혹을 이기기 위하여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계명을 위반해야 될 일이나 위험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더욱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⑦ “악에서 구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설령 범죄를 했더라도 그 죄에서 건짐 받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한 것처럼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으니까 지금도 저희들이 어떤 거리끼는 문제를 계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더욱 회개하고 돌이켜지기를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마9:12). 하나님은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도 건져 주시는 분이시고(시40:2), 불한당을 만나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도 건져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분(눅10:33-34)이십니다. 그런고로 성도가 혹 범죄 상태에 있더라도 낙망하지 마시고 기도를 계속 하셔야 할 것입니다.

3) 마지막 부분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한 것은

① 하나님이 모든 나라와 모든 권세와 모든 영광의 주인이시므로

② 오직 하나님이 그 영광을 영원히 누리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 목적으로 결론을 지은 것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극히 하나님 중심”임을 입증하신 말씀입니다.

③ 그런데 이 말씀이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유력한 사본(시내산, 바티칸, 베자사본)에는 없고, 단편사본에만 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구가 기록된 것은 내용의 취지가 기도문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으로 본문과의 문맥이 상통하고 또 대상29:11-12의 말씀과 상통하기 때문에 성경에 수록이 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기도문은 ① 예수님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를 바라셨다는 점과, ② 중요한 내용들을 간단하게 포괄하신 점과, ③ 극히 하나님 중심이고, 신령한 은혜 중심이란 점과, ④ 성도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곱 가지 의무를 포함하신 내용임을 유의하셔서 한 조목 한 조목 기도하실 때마다 중요한 의미를 심도 있게 다짐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모범하셔야 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