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33-37


본문 은 예수님께서 ① 맹세에 대한 잘못된 교훈을 지도하시고, ② 맹세를 안 하고 사는 진실한 성도의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1. 본문 33절을 보시면 “옛사람에게 헛맹새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는 랍비(율법교사)들의 교훈이 있습니다.

1) 이 교훈은 레19:12에 근거한 교훈이지만 율법이 말씀한 의도를 그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의 말씀과 의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니 이 말씀은 “맹세를 하고 잘 지키라”는 적극성 있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관련하여 거짓맹세, 즉 실현성 없는 맹세를 하지 말라는 소극적 의미의 교훈이었던 것입니다.

2) 율법시대의 백성들이 서로 신용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보증으로 세우고 맹세한 다음 그것을 지키지 않으므로 많은 송사거리를 만들어낸 모양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율법을 통하여 그와 같은 잘못된 맹세를 하지 말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3) 그들의 맹세가 잘못된 이유는

① 평소에 없는 신용을 맹세로 획득해 보려는 것이 잘못이었고,

② 맹세의 힘이 약한즉, 그것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하여 보증(물)까지 제시한 점이며,

③ 맹세는 미래의 약속인바 미래의 일을 모르면서 맹세한 것인 만큼 잘못된 일이며,

④ 맹세를 위반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만한 보증물을 세운 것 등이 잘못된 일인 것입니다.

4) 그래서 되도록이면 “맹세를 안 하고 사는 진실한 백성들이 되라”는 교훈이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같은 맥락으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2. 신용세계에서는 사실상 맹세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말한 대로 지키며, 의심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 약속을 위반하는 사례가 생겼다 해도 신용세계에서는 이를 불가피한 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사회는 너무 믿지 못하는 풍조가 많아서 서약서, 계약서, 각서, 보증서, 신원증명서, 심지어는 보증보험까지 제시해야만 하니 이것은 다 불신풍조의 만연함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신세계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성도의 세계만은 맹세를 다짐할 필요가 없는 진실하고 신용 있는 세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또 맹세를 할 때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자신의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본래 맹세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맹세의 확고함을 더욱 인정받기 위하여 증거물을 내세우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증거물들은 다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으니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로,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으로, 또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구별하신 도성으로, 머리도 하나님이 검고 희게 하시는 것이어서 만일 맹세를 위반할 경우에는 그 보증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까지 명예훼손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맹세의 보증물 세우는 문제도 마땅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흔히 성도란 명예와 교인이란 명분을 내세워 신용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만, 만일에라도 신용스럽지 못했을 때는 “성도와 교인의 주” 되시는 하나님과 교회의 명예를 여지없이 실추시키게 되므로 역시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4. 37절의 “옳다옳다 아니라아니라”하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옳다고 생각하여 할만한 것은 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하므로 불확실한 여운을 남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1) 즉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판단하는 지혜를 갖고,

2)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또는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하여 확실하게 하고,

3) 약속을 할지라도 미래의 세계는 불확실한 것이니까 불확실한 일로 당하는 책임까지 장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니까???주님의 뜻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약4:14,15)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① 다만 “나의 책임이므로 힘이 닿는 한 노력하겠다”는 정도가 적당하고, ② 또 자기의 힘과 결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꼭 시행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5. 그리고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쫓아난다”하셨으니 이것은 확실한 판단으로 확실하게 이행하지 못하면 결국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6. 결론적으로 맹세에 관련된 몇 가지 말씀을 더 드린다면

1) 진실치 못한 사람들과 혼돈하여 사는 세계에서 맹세 같은 것이 전혀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맹세란 강한 일방적 약속을 뜻하지만, 통상적으로 어떤 약속이나 계약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에 성도는 계약을 잘 지켜야 하고, 우려성 있는 계약을 하지 말아야 하며, 또 계약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미리 예상하여 그 대책계약까지 합의하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할 것입니다. 신용세계란 약속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약속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지켜지지 못했을지라도 그것을 사랑으로 수용하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바라시는 맹세없이 살아도 되는 세계입니다.

2) 하나님께 대한 서원입니다.

① 하나님께 약속하는 것을 서원(레27:2,민30:2,신23:21)이라 하셨고, 또 맹세란 말로도 사용하였습니다(수9:18,전8:2).

② 문제는 하나님께 드린 맹세나 서원은 취소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말라”고 하셨고(시15:4), 또 그런 사례가 여호수아 9장, 10장에 나타나 있으니(수9:3-6,15,18-21,10:6-14) 잘못알고 속임을 당하여 서원한 것이라도 그대로 이행하므로 복을 받은 사실이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대한 맹세를 위반한 것 때문에 화를 받은 사실이 있으니, 바로 사울이 기브온족을 죽인 일입니다(삼하21:1-9,삼상22:18,19). 사람을 상대한 약속이나 맹세는 상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합당한 절차에 따라 변동, 파기, 타협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③ 그러나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범위에서 간과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권리 밖에서 잘못 맹세하였든지(자식이 부모의 승낙 없이 한 것;민30:2-5) 또는 자유인으로 맹세한 후 부자유인이 되어 그 맹세 실천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하는 경우(예:처녀 때 맹세하여 지키던 중 결혼한 후 남편이 반대하는 경우;민30:6-16)에 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드린 맹세는 자신에게 자유와 능력이 있는 한 지켜야 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결국 하나님을 속인 죄가 되 는 것입니다(신23:21). 진실과 이해와 협력이 있는 세상이라면 맹세가 없어도 될 것임을 예수님이 강조하셨으므로 성도들은 최대한 신용 있게 사는 세계를 이루셔야 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