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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십자가를 사랑하자 (마16:21-24)
예수님의 공생애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임을 제자들에게 확신시키는 전반부 사역과, 메시야의 사명이 무엇이며 어떻게 감당하는지를 보여주는 후반부 사역으로 나눈다. 본문은 후반부 사역의 문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언과 베드로의 반응을 기록한다. 예수님의 예언에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1)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신앙고백의 칭찬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 사탄이 되어버린다. 왜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였을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님의 인기를 누리기 위해서라는 해석을 하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사랑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이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고맙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말이다. 베드로는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려는(마20:28) 예수님의 마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사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는 말씀처럼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인간적인 동정심으로 방해하는 자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차마 인정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어서 사람 듣기 좋은 소리 하지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종노릇을 할 때가 많이 있다.
예수님은 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 갈 수 있는가?
(1)자기를 부인하고
진정한 자기부인이 무엇일까? 바클레이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이라"하였다.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내 유익보다는 주님의 유익을 따르는 것이다. 자기중심의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생활의 지배원리와 그 이상으로 삼는 삶이다. 자기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없다. 철저하게 겸손하고 낮아져야 한다. 교만하면 절대로 십자가 질수 없다.
(2)자기 십자가를 지고,
세상의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몫의 십자가가 있다. 부모, 남편, 아내, 자식, 형제, 가난, 질병, 핍박 모든 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주신 것이라면 져야하고 그 잔을 마셔야한다. 가정, 교회, 민족의 십자가도 기쁨과 감사로 져야한다. 십자가는 사형틀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다.
(3)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는 무엇인가? 언뜻 짊어지고 다니는 짐처럼 생각되기에 어렵고 힘들면 다들 십자가를 떠난다. 열심히 주님을 따르다가 출세하고 변질되어 예수를 버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한다.
맺는말
오늘 말씀은 베드로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칭찬받던 베드로가 무서운 책망을 받은 이유는 인간적 감정으로 십자가의 길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라가자.
출처/이상민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