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9-24

본문 말씀은 전체의 의미를 “하나님께 헌금하는 신앙”이라 할 수 있고, 3대지로 나눌 수 있으니 ① 보물을 하늘에 쌓을 것(19-21절), ② 신령한 눈이 밝아야 할 것(22-23절), ③ 두 주인을 섬기지 말아야 할 것(24절)을 교훈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 헌금하는 신앙에 대하여(19-21절).

1) 보물을 땅에 쌍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둠이 곧 자신을 위함인 줄 알아야 합니다(19-20절).

① 이 말씀의 “보물”이란 진귀한 물건 또는 돈, 그리고 축적된 재물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보화나 돈 또는 재물을 가졌다면 이는 자신의 매일 생활에 쓰고 남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과 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마6:11,딤전6:8). 따라서 이 보물은 자기의 불가피한 용도에 쓰고 남은 재물을 뜻합니다.

② 이것이 “하늘에 쌓인다”는 것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는 그의 몸 된 교회에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자기의 물질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용한다”해도 그 사용의 권리를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것은 헌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일에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헌납되어야 할 것입니다.

③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은 “헌금자 자신을 위함이라”고 두번이나 강조하셨습니다(19-20절). 하나님은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시고 그 비중에 따라 평가하시며(막12:41-43), 거기에 대응하는 복으로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향유 한 옥합을 머리에 부은 여인을 예수님은 크게 칭찬하여 이르시기를 “온 천하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26:7,13)하셨고, 또 교회의 이름으로 전달하는 구제비에 대하여서도 역시 “심은대로 거두게 해 주신다”(고후8:6),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후8:7), 또 “풍성하게 하시고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고후8:10,11)고 하셨습니다. 그 이외에도 십일조 헌금을 인하여 재물의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말3:10,마23:23).

④ 여기에서 저희들은 헌금의 두 종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름을 지어 드리는 헌금으로 예배헌금, 감사헌금, 십일조헌금, 기타 봉사 헌금 등이요, 또 하나는 자기의 축적된 재산을 무조건 드리는 헌금입니다. 이런 헌금은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일입니다(행4:34-37).

2) 하나님께 드려진 재물, 즉 헌금의 손길에는 손해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① 거기에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질도 못한다”하셨으니 이는 드려진 물질에 일체 피해가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비단은 좀이 먹고, 동전에는 녹이 슬며 귀중품은 도적맞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보관하시고 쓰시는 데는 일체 그런 것이 없습니다.

② 만일 사람이 재물을 가지고 있다면 무익할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아진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거나 그 재물을 유익 없게 사용하거나 또 마땅히 사용해야 할 일에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세상에서 자신만 아는 욕심장이가 될 것이요, 이로 인하여 신앙에도 손해가 있고(마19:23), 범죄의 올무가 될 수도 있으며(딤전6:10), 또 자칫하면 재리의 유혹에 끌려 신령한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마13:22).

3) 헌금과 함께 성도의 마음도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21절).

① 그 말씀이 바로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물질보다 성도의 마음을 원하십니다(신6:5,미6:6-8,마22:37).

② 사람이 보화를 소유하면 그 보화에 마음을 빼앗기듯이 그 보화를 하나님께 드리면 자연히 그 마음도 하나님께로 끌리게 되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은혜를 사모하는 쪽으로 기울어 질 것입니다. 성실한 마음의 제사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은 물질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잠23:26,마15:8,히10:22).

2. 신령한 눈이 밝아져야 함에 대하여(22-23절).

1) 육체의 눈은 몸의 등불과 같아서 육신의 활동을 인도하는 것처럼 마음의 지혜는 믿음의 등불로 신앙생활을 지도합니다. 만일 육체의 눈이 나빠서 만물을 보지 못한다면 그 답답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마음의 지혜(신앙의 지식)가 없으면 그 영육간의 어두움은 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성도가 육체의 눈만 밝고 신령한 눈이 어두우면 현실과 물질의 가치만 알고 신령한 은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보물을 하늘에 쌓는 성도는 하나님 보는 눈이 더 밝아질 것입니다.

3)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한다”(엡1:17-19).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신령한 은혜의 가치를 깨닫고 헌금의 성실함도 나타낼 수 있는 성도가 되셔야 할 것입니다.

3. 두 주인을 섬기지 말 것에 대하여(24절).

1)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심은 성도가 참되신 주 하나님만 섬겨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다른 주인을 두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절대자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종속이기 때문입니다(요13:13,16).

2) 만일 성도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있거나 더 중히 여기는 대상이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요(출20:5), 바른 신앙생활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대등하게 섬겨서도 안 되기 때문에 흔히 물질우상주의에 빠지는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가난하게 살아도 믿음중심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이루어지지 않은 성도는 아직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음을 반성하셔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마6:11)하셨고, 3일을 굶고 기진한 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7병2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막8:1-3). 성도가 물질생활에 상당하게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라도 물질과 현실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마10:37).

4) 흔히 물질생활에 여유 있는 성도들이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하여 믿음 생활을 멀리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두 주인(하나님과 재물)을 섬기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얻어지는 소득만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신령한 눈을 더욱 밝혀서 신령한 소망을 바라보시고, 현실적 유혹을 이기며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만 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