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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과 예수 (여호수아 20: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3.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4.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5.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7.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
8. 또 여리고 동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택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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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행성이 태양의 인력(引力)에 의하여 궤도를 운행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영위하는 자들입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그의 구속사적인 경륜을 만들어 나가십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 또는 모든 교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에게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여기 가나안 입국의 선봉장 여호수아가 그곳의 토지를 분배하면서 「도피성」이라 불리우는 특별한 성읍을 만든 것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의 원리를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일찌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영도자 여호수아에게 도피성의 제도를 천명한 바 있습니다. 민수기 35:11-12에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서 모세가 이미 요단강 동편 베셀과 길르앗 라못과 바산골란 등 세 성읍을 구별해 두었습니다(신 4:43). 이후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서 납달리 산지의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헤洹隙?구별하여 모두 여섯 성읍이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 9절에는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Ⅰ. 하나님께서 택정하여 주신 곳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실수 때문에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살기 위하여 도망가는 사람을 위해서 도피성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도망가서 숨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장소로 가야됩니다. 출애굽기 21:12-13에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을 겸전하신 분입니다. “범죄한 그 영혼은 죽으리라”하시고(겔 18:3), 죄에 대한 형벌을 선고 하시면서도 한편으로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고 하였습니다(겔 18:32). 죽여야 마땅한 사람이 죽음에서 피할 수 있는 곳이 도피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입니다.
(1) 노아의 방주가 도피성입니다.
노아 시대에 인간의 죄악이 극에 달했고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곧 도피성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6:5-7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노아에게 명하여 그 가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방주를 예비하게 하였습니다(창 6:13-17). 이후 밤낮 사십일 동안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리는 등 입체적인 대 홍수가 났을 때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 죽었으나 노아의 가족을 비롯하여 그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간 짐승은 다 살았습니다(창 6:22-24).
(2) 세상에 있는 교회가 도피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마귀의 권세 아래서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불안해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교회」라고 하는 도피성을 정해 두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집단입니다.
교회라는 말(?κκλησ?α)의 뜻은 「부름 받은 무리」를 의미합니다. 세상이라고 하는 죽음의 도성에서 마귀에게 속박 당하고 있는 인간을 해방시키고 불러내어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습니다(롬 8:1-2).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상 마귀의 세력과는 원수가 되어 있으며 마귀는 죽음을 무기로 하여 쉴새없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8). 히브리서 12:22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온성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계시록 14:1에는 시온산에 십사 만 사천인이 섰는데 이들은 세상 가운데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3) 도피성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편 18:2-3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여호수아가 구별하여 만들어 놓은 도피성이나, 세상에서 거룩한 도성으로 이름지어진 교회도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 아래 신음하는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의 도피성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자기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는 마귀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완전하게 보호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롬 8:35-39).
Ⅱ. 도피성의 특징
본문 3절에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도피성의 제도는 살인자가 복수하려고 쫓아오는 사람으로부터 피하여 은신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든 것입니다. 물론 이 살인자는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부지중 오살(誤殺)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살기 위하여 도망 오는 사람에게 도피성은 그가 쉽게 찾아오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1) 이용하기가 쉬워야 됩니다.
신명기 19:3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19:9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35:14에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도피성을 여러 곳으로 분산하게 하신 것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쉽게 갈 수 있게 항상 도로를 닦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도피성이 인가에서 너무 먼 곳에 있다거나 또는 가는 길에 장애물들이 있어서 접근하기 곤란하면 숨가쁘게 달려오는 사람에게 위험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쫓기는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시며 안전한 도피성으로 길을 안내하십니다(마 11:28). 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마 9:12-13)
(2) 함부로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민수기 35:26-27에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찌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고 하였습니다. 이는 도피성과 죄인의 생명이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위에 물이 범람해 있는 동안 육지에 있거나 코로 호흡하는 생명체는 다 죽었지만 오직 방주 안에 있는 자는 살았습니다(창 7:22-23). 만일 방주 안에 있는 자가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면 그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상합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살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려하고 어떤 고생도 감수하게 되지만 일단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노아 시대 방주 안에서 지낸 1년 이상의 기간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도피성 안에 들어온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바깥세상을 동경하고 나가고 싶은 몸부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생명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오기만 기다리는 보수자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보호자와 함께 있어야 됩니다.
4-5절에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찌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살인자가 다급하게 도망 와서 성문 앞에 이르면 그 성읍 장로는 즉시 성문을 열고 받아 들여 줍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오는 사람이 있어도 성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이는 쫓기는 자의 생명을 보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또한 그곳에서는 그를 관리해주는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6절에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책임지고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출 28:4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죽음을 맡아 주신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히 7:26-27).
Ⅲ. 도피성 안에서 사는 자는
구원의 상징이 되는 도피성은 제각기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도피성이라고 하는 제한된 공간에서 불편하고 답답한 생활을 할 것 같이 여겨지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은혜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1) 갈릴리의 게데스
이는 하나님의 저녀된 사람의 신분과 걸맞는 이름입니다. 「게데스」는 히브리 말 「카도쉬」에서 따온 말로써 그 뜻은 「거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였습니다(레 11:45).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자요 동시에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성결된 삶을 사는 자입니다. 본래는 죄인 되었던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고 거룩해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엡 1:7).
(2)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
「세겜」이란 말은 「어깨」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몸에서 어깨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짐을 지고 물건을 들어올리는 등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9:6에는 예수님의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로 비유하셨습니다(눅 15:5).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모든 죄와 죽음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서 다 맡아 주시고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3) 유다 산지의 헤브론
헤브론은 「하바르」라는 말인데 이는 연결(joint)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에베소서 2:14-16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4) 르우벤 지파 중에 있는 베셀
이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성읍들로써 일찌기 모세의 생전에 그 땅을 점령하고 먼저 지정해 주었던 곳입니다(신 4:41-43). 「베셀」이라는 말은 요새지(要塞地)를 뜻합니다. 적군의 내습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고 견고한 요새를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백성은 안전하게 보호하는 장치를 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라고 하였습니다(시 18:2). 악마가 들끓고 죽음의 세력이 기습적으로 덮쳐 올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 안전이 보장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렘 1:18-19).
(5) 갓 지파 가운데 길르앗 라못
「라못」은 들어올리고 높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수평선 끝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듯이 밝고 빛나게 드러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세상 가운데서도 쓸모 없는 자요 죄와 죽음에 얽매여 종노릇하는 비천한 신분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들어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1:3에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6) 므낫세 지파 중에 있는 바산골란
「골란」은 기쁨 또는 희열을 뜻합니다. 마치 사람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는 것 같은 기쁨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완전한 생명의 보장을 받은 사람이 그 순간 밀려드는 구원의 감격과 희열을 입으로 행동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해 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도 확연하게 나타납니다(엡 5:19). 전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 만의 축복이며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니는 풍성입니다(엡 1;23).
이와 같은 희열과 감격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누리게 되는 신비로운 축복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3.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4.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5.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7.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
8. 또 여리고 동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택하였으니
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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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행성이 태양의 인력(引力)에 의하여 궤도를 운행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영위하는 자들입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그의 구속사적인 경륜을 만들어 나가십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 또는 모든 교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에게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여기 가나안 입국의 선봉장 여호수아가 그곳의 토지를 분배하면서 「도피성」이라 불리우는 특별한 성읍을 만든 것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구속의 원리를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일찌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의 영도자 여호수아에게 도피성의 제도를 천명한 바 있습니다. 민수기 35:11-12에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보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서 모세가 이미 요단강 동편 베셀과 길르앗 라못과 바산골란 등 세 성읍을 구별해 두었습니다(신 4:43). 이후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서 납달리 산지의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헤洹隙?구별하여 모두 여섯 성읍이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 9절에는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Ⅰ. 하나님께서 택정하여 주신 곳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와 실수 때문에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살기 위하여 도망가는 사람을 위해서 도피성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데나 도망가서 숨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장소로 가야됩니다. 출애굽기 21:12-13에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을 겸전하신 분입니다. “범죄한 그 영혼은 죽으리라”하시고(겔 18:3), 죄에 대한 형벌을 선고 하시면서도 한편으로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고 하였습니다(겔 18:32). 죽여야 마땅한 사람이 죽음에서 피할 수 있는 곳이 도피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입니다.
(1) 노아의 방주가 도피성입니다.
노아 시대에 인간의 죄악이 극에 달했고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족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곧 도피성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6:5-7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노아에게 명하여 그 가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방주를 예비하게 하였습니다(창 6:13-17). 이후 밤낮 사십일 동안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리는 등 입체적인 대 홍수가 났을 때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 죽었으나 노아의 가족을 비롯하여 그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간 짐승은 다 살았습니다(창 6:22-24).
(2) 세상에 있는 교회가 도피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마귀의 권세 아래서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불안해하는 인간들을 위하여 「교회」라고 하는 도피성을 정해 두었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집단입니다.
교회라는 말(?κκλησ?α)의 뜻은 「부름 받은 무리」를 의미합니다. 세상이라고 하는 죽음의 도성에서 마귀에게 속박 당하고 있는 인간을 해방시키고 불러내어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습니다(롬 8:1-2).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상 마귀의 세력과는 원수가 되어 있으며 마귀는 죽음을 무기로 하여 쉴새없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8). 히브리서 12:22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온성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계시록 14:1에는 시온산에 십사 만 사천인이 섰는데 이들은 세상 가운데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3) 도피성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편 18:2-3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여호수아가 구별하여 만들어 놓은 도피성이나, 세상에서 거룩한 도성으로 이름지어진 교회도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 아래 신음하는 인간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의 도피성입니다. 로마서 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자기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는 마귀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완전하게 보호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롬 8:35-39).
Ⅱ. 도피성의 특징
본문 3절에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도피성의 제도는 살인자가 복수하려고 쫓아오는 사람으로부터 피하여 은신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든 것입니다. 물론 이 살인자는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부지중 오살(誤殺)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살기 위하여 도망 오는 사람에게 도피성은 그가 쉽게 찾아오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1) 이용하기가 쉬워야 됩니다.
신명기 19:3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19:9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35:14에 “세 성읍은 요단 이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도피성을 여러 곳으로 분산하게 하신 것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떤 사람이 찾아와도 쉽게 갈 수 있게 항상 도로를 닦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도피성이 인가에서 너무 먼 곳에 있다거나 또는 가는 길에 장애물들이 있어서 접근하기 곤란하면 숨가쁘게 달려오는 사람에게 위험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쫓기는 사람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시며 안전한 도피성으로 길을 안내하십니다(마 11:28). 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마 9:12-13)
(2) 함부로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민수기 35:26-27에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찌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고 하였습니다. 이는 도피성과 죄인의 생명이 밀접하게 연관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위에 물이 범람해 있는 동안 육지에 있거나 코로 호흡하는 생명체는 다 죽었지만 오직 방주 안에 있는 자는 살았습니다(창 7:22-23). 만일 방주 안에 있는 자가 뚜껑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면 그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상합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는 살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려하고 어떤 고생도 감수하게 되지만 일단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노아 시대 방주 안에서 지낸 1년 이상의 기간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도피성 안에 들어온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바깥세상을 동경하고 나가고 싶은 몸부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생명의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오기만 기다리는 보수자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보호자와 함께 있어야 됩니다.
4-5절에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피의 보수자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찌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살인자가 다급하게 도망 와서 성문 앞에 이르면 그 성읍 장로는 즉시 성문을 열고 받아 들여 줍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오는 사람이 있어도 성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이는 쫓기는 자의 생명을 보호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또한 그곳에서는 그를 관리해주는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6절에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책임지고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출 28:4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와 죽음을 맡아 주신 영원한 대제사장입니다(히 7:26-27).
Ⅲ. 도피성 안에서 사는 자는
구원의 상징이 되는 도피성은 제각기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도피성이라고 하는 제한된 공간에서 불편하고 답답한 생활을 할 것 같이 여겨지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신령한 은혜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1) 갈릴리의 게데스
이는 하나님의 저녀된 사람의 신분과 걸맞는 이름입니다. 「게데스」는 히브리 말 「카도쉬」에서 따온 말로써 그 뜻은 「거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였습니다(레 11:45). 성도는 세상과 구별된 자요 동시에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성결된 삶을 사는 자입니다. 본래는 죄인 되었던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고 거룩해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엡 1:7).
(2)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
「세겜」이란 말은 「어깨」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몸에서 어깨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짐을 지고 물건을 들어올리는 등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9:6에는 예수님의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오는 목자로 비유하셨습니다(눅 15:5).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모든 죄와 죽음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서 다 맡아 주시고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3) 유다 산지의 헤브론
헤브론은 「하바르」라는 말인데 이는 연결(joint)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이루게 됩니다. 에베소서 2:14-16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4) 르우벤 지파 중에 있는 베셀
이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성읍들로써 일찌기 모세의 생전에 그 땅을 점령하고 먼저 지정해 주었던 곳입니다(신 4:41-43). 「베셀」이라는 말은 요새지(要塞地)를 뜻합니다. 적군의 내습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고 견고한 요새를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백성은 안전하게 보호하는 장치를 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라고 하였습니다(시 18:2). 악마가 들끓고 죽음의 세력이 기습적으로 덮쳐 올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 안전이 보장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렘 1:18-19).
(5) 갓 지파 가운데 길르앗 라못
「라못」은 들어올리고 높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수평선 끝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듯이 밝고 빛나게 드러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세상 가운데서도 쓸모 없는 자요 죄와 죽음에 얽매여 종노릇하는 비천한 신분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신분으로 들어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21:3에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6) 므낫세 지파 중에 있는 바산골란
「골란」은 기쁨 또는 희열을 뜻합니다. 마치 사람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는 것 같은 기쁨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완전한 생명의 보장을 받은 사람이 그 순간 밀려드는 구원의 감격과 희열을 입으로 행동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성령에 충만한 사람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해 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도 확연하게 나타납니다(엡 5:19). 전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 만의 축복이며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니는 풍성입니다(엡 1;23).
이와 같은 희열과 감격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누리게 되는 신비로운 축복입니다.
출처/손상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