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행 28: 30 ~ 31)


31절에 보면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협력보다는 다투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금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는 물론 교회 안에서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골프 철학의 하나인 “상대방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세상의 역사를 보면 모든 것이 권력투쟁(power game)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치만 권력투쟁이 아닙니다. 사업도 그렇고, 심지어 교회도 권력투쟁이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일에는 항상 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도행전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데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들이 사도행전을 살펴본 대로 계속해서 바울을 방해하고 금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금하는 사람들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여기서 먼저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의 사도행전적 의미를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의 사도행전적 의미는?

(1)먼저 아닌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의 방해]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의 방해가 조직적으로 있었던 것을 우리는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탄의 방해]가 없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사실 복음 전파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의 일환이기 때문에 바울을 제거하려는 사탄의 음모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계속적으로 있었습니다.

셋째로 [환경적 장애물]이 없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울에게 로마로 재판받기 위해서 갈 때에 유라굴로 라는 풍랑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2)그러면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는 말의 사도행전적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였다]는 뜻입니다.
물론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마다 방해꾼들이 있었고, 정치적인 모략도 있었고, 심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음식도 먹지 않겠다고 하는 극단적 테러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볼 때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구더기가 수만 마리가 데모를 해도 폭우 한번 내리면 다 떠내려가듯이 도무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바울에게 외면적 혹은 내면적 방해가 실제로 있었지만 그러나 바울이 하려고 했던 복음전파를 [무력화시키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불이 작게 탈 때에는 물로 불을 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큰 불이 일어났을 때에는 호수로 부어대는 물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오히려 불을 더 강하게 타게 하기도 합니다.

셋째로 바울의 복음전파를 [중지시킬 만큼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서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였기 때문에 바울의 복음전파를 중지시킬 만큼의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바울은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고, 땅 끝인 스페인까지 갔습니다. 다만 바울이 생각했던 방법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간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주기도문에서도 그렇게 나오고, 계시록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씩 다 이루어집니다. 다만 그 방법과 기간이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를 뿐입니다.

2.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금하는 사람이 없는 일은?

(1)[복음을 전파할 때] 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있겠지만 하나님과 대항할 만큼의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고,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 마귀의 방해는 변함없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고, 그의 뜻은 영원히 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일을 쉬지 말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서게 됩니다. 인간의 뜻은 다 바벨탑처럼 언제인가는 다 무너지고 맙니다.
심지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 위대한 제국들도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지 말라는 형태입니다.
둘째는 하라는 형태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크게 말하면 첫째로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자기의 의를 세우는 일을 많이 합니다. 특별히 정치가들이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고, 다음 사람이 나타나면 앞에 있었던 나라들은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는 아무도 금할 수 없습니다.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금하지 못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믿음으로 할 때 금지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롬14:23절). 이 때에 금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3)[사랑으로 행할 때] 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많은 금지는
첫째로 우리의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금하는 일이 생깁니다.
둘째로 금하는 일은 [자기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셋째로 금하는 일은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넷째로 오해 때문에 금하는 일이 생깁니다.
다섯째로 [사랑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저도 주의 일을 하면서 때로는 믿음으로는 하는데 사랑이 부족하고, 사랑으로는 하는데 믿음이 부족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때 주변에서 방해가 있고, 장애물이 생깁니다. 그러나 온전히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면 금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습니까?

3. 금하는 사람이 없는 일을 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1)[일을 성취케] 하십니다.

인간의 욕구 가운데 하나가 성취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 땅에서 무엇을 성취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유는 우리들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아니라 자기의 왕국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번 우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깊이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그것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는 일인가?
아니면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일은 아닌가? 자신의 왕국은 결국 사울의 왕국처럼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다윗의 왕국이 비교적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메시아 왕국 즉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의 왕국도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2)[천국에서의 큰 상급]이 있습니다.

계2:10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어떤 부귀영화가 우리의 목적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에서의 상급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일하면 이 땅에서도 부수입이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아도 부수입이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22:12절에 보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3)이 땅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삼대 문제는 첫째는 죄의 문제요 둘째는 죽음의 문제요 셋째는 의미의 문제입니다.
과연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일까? 그래서 공부고 하도, 돈도 벌고, 직장도 가지고, 신앙생활도 하고, 봉사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가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꿈속에서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고통이 있고, 시련은 있지만 그래도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는 것은 제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4)[영광과 유익과 행복]이 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유익을 남기고, 우리들 자신에게는 행복이 됩니다.
인간의 하는 일의 가치는 종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횡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는 행복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삼박자가 착착 맞는 삶이 가장 보람 있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맺는 말

오늘로서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은 억지로 인간의 목적을 이루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금하는 사람이 없는 일에 우리의 삶을 투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신성종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