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0
샘은 퍼야 마르지 않는다. 아무리 큰 샘이라 할지라도 물을 퍼내지 않으면 그 샘은 얼마 있다가 마르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샘이라 할지라도 물을 계속 퍼내는 한 마르지 않고 시원한 샘물을 끊이지 않고 찾는 이들에게 제공한다.
뼈가 부러져 한두 달 동안 기브스를 한 사람은 기브스를 푼 후에 한 동안 근육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 왜? 그동안 통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도 써야 가치가 생겨난다. 항아리에 몰래 엽전을 모으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돈의 가치를 살릴 수 없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 돈을 주고 사먹는 소비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서 좋고, 파는 가게 주인은 이문이 생겨 좋고, 아이스크림 생산 공장은 또 아이스크림을 팔 수 있게 돼 좋고, 공장의 노동자는 계속 일거리가 생기니까 좋고. 따져보면 돈의 쓰임에 따라 그 가치는 계속적인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노인 치매가 사회 문제로 크게 대두되었는데 두뇌를 계속 사용하는 노인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치매가 적게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다. 두뇌도 자꾸 써먹어야 잘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것은 부지런히 써먹어야 할 것이다. 작은 깨달음도 그저 알고 있는 정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써먹어야 그 진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많이 아는 것보다 적게 알더라도 그것을 유효적절하게 잘 써먹는 사람이 지혜롭지 않을까? 좋은 생각도 자신의 머릿속에만 남겨 두지 말고 꺼내어 지금 이 시간 그것을 문자로 기록해 놓는다면 나중에라도, 혹 다른 사람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남겨 두지 말고, 숨겨 두지 말고 가진 것을 자꾸 써먹고 나누어야겠다
신부들은 일찍 죽을수록 좋아
과자와 사탕을 한아름 사 가지고 할머니 수녀님들이 모여 사시는 수녀원을 찾아갔다.
하나님의 딸로 사시다가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할머니 수녀님들만 계신 곳이라 손자 같은 신부가 찾아가면 어찌나 좋아들 하시는지.
나이가 많아지면 어린아이 같이 된다고 하더니, 하나님께 봉헌된 생활로 늙으신 분들이라서 그런지 더욱 어린아이 같은 모습들이다.
나이 많은 할머니 수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 신부님들은 일찍 죽는 게 좋아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신부생활 오래하면 할수록 유혹도 많이 당하고 어려움도 많이 겪고, 때로는 잘못되는 일도 있잖아요. 그러니 신부 되어서 착한 일만 많이 했을 때 죽는 게 좋지요. 서품 받고 나서 바로, 몸도 마음도 깨끗할 때 죽으면 더 좋구요."
연세 높으신 할머니 수녀님이라 많은 일을 보고 느끼셨기에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된다.
"수녀님, 저는 더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신부 되어서 지금까지 신부다운 신부로 잘 살지 못했거든요. 좋은 일 좀 해놓고 죽어야겠어요. 저, 좀 더 살아도 되죠?"
이상각,「나 그리고 그대들의 뒷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