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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밤나무골에 있는 영성 수련원에서 사역을 할 때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갈되어 있는 영혼을 채울 수 있는 기간이었다. 그곳의 시설은 다른 기도원이나 영성 센터에 비해 열악했다.
그 해 겨울은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물, 불, 사람이었다.
첫 번째로 나를 힘들게 한 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모터에 이상이 생겨 물이 나오지 않았다. 번번이 모터의 뚜껑을 열고 물을 채워야 물이 나오는 것이다. 매일 아침 물 끌어올리기 작업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물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절실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매일 물을 채우러 가면서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이 찾아왔다. 이 불만을 하나님이 들으셨나보다. 이젠 물을 넣어도 잠깐이라도 쓰지 않으면 물이 안 나오는 것이다. 전에는 물을 넣으면 하루는 그럭저럭 사용했는데 이제는 쓸 때마다 넣어야 했다.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았는지. 수련원에 함께 계셨던 집사님도 원인을 몰라 고치지 못하셨다 .
수전(水戰) 이 계속 되는 중에 화전(火戰)이 터졌다. 기름값이 많이 올라 땔감 보일러를 설치했는데 효율성이 없다. 나무를 많이 집어넣어도 열이 별로 나지 않았다. 나무를 수없이 갖다 넣어도 방안은 냉기가 가득할 뿐. 매일 하는 작업 중 하나가 나무를 해와서 장작을 패는 것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패고 나면 먹었던 게 다 소화되어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난다. 그러나 여기서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팬 장작으로 매운 연기를 마셔 가며 불을 지펴야 한다. 저녁 9시 정도에 지피면 한숨 자다가 일어나서 새벽 2시 정도에 장작을 더 넣어주고 다시 이른 아침에 다시 장작을 공급해주어야 겨우 온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힘든 것은 물도 불도 아닌 사람이었다.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너무 없어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영성 수련원이라 특별히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면 멀리서 들리는 소쩍새 울음소리와 함께 외로움이 밀려온다. 이것을 이겨 보려고 책을 읽거나 기도를 한다. 그러다 가뭄에 콩나듯 사람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졌다가 그 사람들이 가고 나면 외로움은 더욱 깊은 골을 만들고 힘들게 한다.
처음에는 그 고독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흐르면서 고독을 조금씩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마음에 찾아왔다. 어느 날 나무를 하면서 주님과 대화시간을 갖는데, 주님이 골고다 언덕에서의 고독과 십자가의 무거움을 말씀하셨다. 나는 나무를 하면서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게 되었고 하늘에서 공급되어지는 은혜 가운데 젖어들었다.
이렇게 지루하고 버겁지만 12월, 1월, 2월이 지나가고 3월이 왔다. 힘든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으니 해마다 찾아오는 여상한 봄이 아니었다. 떨어진 갈색 낙엽 사이로 파릇파릇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파릇함이 얼마나 신기하고 예쁜지 나는 그 이름 모를 풀들을 만져가며 풀들에게 사랑을 속삭였다. 무덤 가에 핀 할미꽃은 아름다운 아가씨보다 더 나를 설레게 했고 푸른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몰려다니는 작은 참새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생명의 신비를 발견했다.
왜 매년 맞는 봄인데 이렇게 아름답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겨울 동안 겪은 물과 불과의 전쟁, 고독과의 전쟁이 봄을 더욱 아름답게 한 것이다. 겨울이라는 고난의 터널이 없으면 봄의 신비에 다다를 수 없듯이 우리 인생에 겨울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한 소중한 겨울이었다. 고난은 영광과 기쁨으로 통하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