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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천에서 목회를 하고 있지만 작년 가을까지 충북 제천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송학면 조그만 언덕 중턱에 세워진 전형적인 시골교회였다. 교회 앞 조그마한 마당에 여러 종류의 꽃들이 계절을 따라 만개하고 각종 야채를 심을 수 있는 텃밭도 딸린 그야말로 시골의 정취가 물씬 배어나는 곳이다. 복슬복슬 강아지가 어린 자녀들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는 ….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Y 집사는 사택 뒷켠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던 50대 후반의 여성으로 나름대로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쓰시던 분이다. 그 집사는 시내에 있는 야식 전문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새벽이면 힘겨운 발걸음을 끌고 버스에서 내려 지름길인 논밭을 가로질러 15분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사택 밑에 나있는 길옆 4평 남짓한 쓸모 없는 땅(집사님이 출퇴근할 때 지나는 길)을 환경미화 차원에서 꽃밭으로 만들어 보고자 손을 좀 보고 있을 때였다. 무거운 돌을 어렵사리 운반하여 화단의 경계석으로 만들고 있을 때 Y 집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사님, 거기 그냥 놔두시면 안돼요? 제가 새벽에 다니는 데 너무 불편하거든요.
집사님, 걱정마세요. 옆으로 통행하실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간 뒤 나는 별 생각 없이 계속 화단을 만들었다.
며칠 뒤 Y 집사는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나를 보고 목사님, 보기보다는 끈질긴 데가 있네요하면서 노골적으로 불쾌한 심기를 나타냈다. 급기야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L 집사에게 그동안의 불만을 다 토로하면서 이사해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 내 귀에도 들어왔다. L 집사가 좋은 말로 권면하고 달래 보아도 막무가내 고집을 꺽지 않더란다. 아들이 제대하면 직장문제도 있고 자기도 출퇴근시 그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식당 주인이 헐값에 전세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다는 명분이었다.
좀 황당하게 느껴지고 당혹감을 금할 수 없었다.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아니, 목사가 힘들게 교회 환경미화를 위해 꽃밭을 만드는데 자신의 편리만 생각하고 이사를 가? 더구나 충분히 통행할 수 있는 길도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도 그렇게 나올 수 있나 ….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피곤한 새벽길을 다녀야 하는 집사의 애로사항을 깊이 생각지 못하고 가볍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나 싶어 반성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집사에게 정 그러시면 그 꽃밭을 없던 걸로 할테니 그냥 지내시는 게 어떠시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 집사도 고집이 있어서 그냥 이사를 가겠단다. 다른 성도들도 Y 집사가 일단 시내로 이사하면 근처 가까운 교회로 나가기 쉬우니 어떡하냐고 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나는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출석교인이 1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교회에 나 때문에 한 성도가 시험에 든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나는 심히 애통하며 한 영혼을 실족케 한 죄를 회개하였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예배시간에 사과를 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에 Y 집사가 다가오더니 자신이 성급했던 것 같다고 하면서 이사를 가더라도 교회는 그냥 나오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해서 Y 집사와의 갈등은 해소되고 다시 평화가 찾아 왔다. 문제의 꽃밭에는 백일홍이 만발하였고 나비와 벌들도 매우 많이 드나들었다. 나중에 그 집사도 자신의 부족함을 사과하였고 모든 것이 좋게 풀렸다. 하나님은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게 하심으로 평화를 위한 씨앗을 심는 비결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