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순목사 (그리스도사랑의교회)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속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핍박을 받는 것은 먼저 예수께서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에 핍박을 하는 자들은 무리하게 핍박하지만 핍박받는 자세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앞서 핍박받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중에 스데반 집사라는 믿음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구원자임을 증거 한다는 이유로 예수가 구원자가 아니라고 핍박하는 세상에 속한 자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하늘에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주여! 저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 보라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선 것을 보노라고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오히려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감사 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스데반 집사의 순교가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요,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믿음의 행위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내게 오는 핍박과 그리스도로 인해 내게 오는 어려움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주께서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는 자세가 신앙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주신 것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너희가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 이유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에 속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은 연고 없는 핍박이 오는 것입니다. 잘못해서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연고 없는 핍박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고 없이 핍박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세상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러한 연고 없는 핍박이 옵니다.

연고 없는 핍박이 우리에게 모욕적인 것, 그러한 상황적인 것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연고 없는 핍박은 영적으로 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내가 의롭고 하나님의 역사에 기여하기 위해서 내가 기도하고 애쓰면 애쓸수록 영적으로 우리에게 막아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막아지는 것은 인간은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내 육체적 환경적 상황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어려움을 갖다 줍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사람의 생각으로 풀려면 안 됩니다. 오직 그 어려움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풀려고 하는 신앙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 앞에 산적했던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믿음 앞에는 그 문제가 굴복되게 되고 오직 성령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역사해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고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의 믿음이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해야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면” 에서 형제가 누구일까?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하면서 그 사랑의 대상을 모르고 사랑을 한다면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랑하기 이전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가? 라고 하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라 한 형제가 과연 누구일까? 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 때에 우리는 그 형제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것이며 고귀한 것입니다. 사랑에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제가 누구인가? 라고 하는 것을 먼저 우리는 깨닫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그 형제를 사랑하십시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 할 때에 복음의 시초가 산상수훈 혹은 산상보훈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으로부터 예수님은 당신이 오신 구원자이며 메시아임을 증거 했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말씀한 말씀은 모여 있는 회중들과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는 말씀이 영적인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적인 말씀이 아니라 오직 그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처럼 그들에게 영적인 말씀을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한 율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기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한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놀라운 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조건을 알고 깨우치기 원해서 말씀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까요? 우리에게 윤리나 도덕적 행동반경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원수가 누구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사랑해야 될 그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라고 말씀하면 될 터인데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미 주께서 과거도 아시고 현재도 아시고 미래도 아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당신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원수로 몰려 죽일 것을 알았기 때문에 너희 원수를 사랑해라. 그리한즉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은혜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 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곧 그리스도인 당신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말씀에 우리가 사랑해야 될 대상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될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분명히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우리에게 설명하는 형제의 사랑은 나의 혈통이나 나의 교우나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형제가 아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형제로 비유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형제로 비유했을까요? 이것까지 그 이유를 깨달을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셔서 사역하실 때에는 아들로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비유해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하는 사랑의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소속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 줄 아십니까? 아브라함의 씨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자라. 아브라함의 씨라 일컬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누구입니까?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에서 산 자란 우리가 알고 있는 목숨이 붙어 있을 때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가 허락한 성령으로 죄 사함 받아 마지막에 부활에 이를 때에 영원한 생명에 이르렀을 때만이 그에게만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수의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만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오직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살인죄인 줄 압니다. 그러면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살인하는 자는 결코 심판을 받고 맙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은 곧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을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문제를 짚고 넘어 가야 되겠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가지고 의롭다고 하고 정죄하고 윤리와 도덕적인 것만 가지고 우리는 구실을 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죄요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죄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죄에 대한 문제를 올바로 알아야 되는 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 대인 관계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올바로 서 있느냐? 라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 때에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요 신앙 생활하는 기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다시 바꾸어 말하면 영적 문제는 고민하지 않고 육적 문제만 고민하는 일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죄를 어떻게 짓고 있습니까?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뜨겁게 들어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가 사랑해야 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말 마음에 사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마음에 사랑함이 없다면 우리는 이 말씀에 걸리는 것입니다. 오직 살인하는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 주신 말씀을 내가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주여! 나는 부족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여! 나의 길을 인도해 주옵소서! 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있으니 나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가치를 바로 알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사는 삶으로 만족하게 말게 하시고 오직 약속하신 성령을 내게 주어서 주님과 교류하는 삶으로 나의 낙이 되게 해 주옵소서! 라고 하는 신앙의 마음을 가질 때에 이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랑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됩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짐을 졌습니까? 주께서 말씀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삶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죄의 짐을 우리는 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풀 수 없는 짐! 칼로도 도려낼 수 없고 물로도 씻을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 씻을 수 없는 것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의 멍에 줄을 끊어주시고 우리를 죄 없게 하시고 의롭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하시겠다고 주님은 이 시간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시거든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예수님과 먼저 사랑의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사람의 눈으로 평가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주님 말씀한 말씀을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말씀을 볼 때에 주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주님은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말씀한 여러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만 본문 말씀에 이렇게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알았습니까? 우리는 사랑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택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택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온갖 멸시천대 모든 것을 주님이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무능해 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 죄와 허물을 인해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 하게 해주시기 위해서 그분은 엄청난 대가를 우리에게 치르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조용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 사랑의 확증을 얻었으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먼저 예수님 우리에게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제 진정한 신앙인은 스데반 집사나 바울사도나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한결 같이 복음을 위해서 그들은 생을 다 바쳤던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고 예수 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사랑하십시다. 어떻게 얼마만큼 사랑해야 될까요? 죽기까지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한 다음에 부활하셔서 다 떠나가 버린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불러서 당신의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허락한 성령을 기다리라.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얻어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어 달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한 연후에 개인적으로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사람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물을 때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이다. 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랑의 약속을 받습니다. 두 번째 꼭 같은 말을 묻습니다. 네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을 때에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두 번째 똑 같은 말씀으로 대답합니다. 세 번째도 똑 같은 말씀으로 묻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언약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젊어서는 네 임의대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띠를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에 가서 두 팔을 벌리게 되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사랑의 확약을 요구한 다음에 예수님은 오직 당신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 달라는 주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인간관계 속에도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갖는다면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서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과 약속한 약속의 말씀을 복음을 증거 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순교해서 진정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을 몸소 나타내 보였던 것을 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의 핵심이 그렇습니다. 예수를 사랑하자! 예수를 사랑하면 핍박이 와도 고난이 와도 어떤 상황이 온다할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것이 진정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먼저 안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사랑하십시다. 그래서 여러분이 잘 부르는 찬송 102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는 그 찬송을 부를 때에 우리 심령에서 주께 우리 신앙고백이 되는 그러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