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목사 (삼락교회)

스코필드 박사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두 가지 큰 복을 주셨는데 하나가 망각의 복이요, 다음이 앞날을 모르게 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잘 안 되겠으나 생각해보면 쓰라리고 가슴 아픈 패배나 배신이 그대로 기억 속에 머문다면 못 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지고 새로운 희망으로 찰 수 있기에 잊을 수 있는 망각은 복이요 미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므로 큰 소망 중에 살 수 있으니 미래를 모르게 한 것도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소망 속에 산다는 것이 너무나도 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헛된 소망 갖고 허무한 인생을 살기도 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1:2) 라고 하니 헛된 것은 참된 것이 아니기에 죽은 소망입니다. 우리의 산 소망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라고 고백하며 산 소망 갖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이 있기 때문이요, 하나님이 주신 산 소망이 무엇인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게 하신다.(3, 5, 6절)
영 죽었던 자에게 믿음으로 거듭나는 즉, 새 생명 주심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은혜이며 선물이고 우리에게 산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3절에 찬송해야 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게 하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소망을 주셨으니 이를 믿는 자에게 거듭나게 하시며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5) 인도하시니 어려운 세상이나 산 소망 갖게 되어 세상에 어려움이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다(6)는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이보다 더 큰 소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현실밖에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것이 다인 것이니 부귀영화, 건강, 명예, 권세, 향락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기에 그것 망해 버릴 때 같이 망해 버립니다. 그것들이 갑자기 휴지가 되어 버리는 일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영원한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의 산 소망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안에서 감사하며 기뻐하며 늘 승리하는 산 소망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영원한 기업을 있게 하십니다.(4, 7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시니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갈 4:7) 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은 세상에 썩고 더럽고 늙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지는 것으로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해칠 수 없는 영원한 상급입니다. 이 영원한 상급이 약속되어 있기에 그 많은 헌금도 아낌없이 하는 것이요,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힘을 다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갖은 수고와 힘든 것을 마다 아니하고 주의 일 하는 것도 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7) 하셨으니 이 얼마나 산 소망입니까?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얼굴이 천사같고 해같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하늘 문이 열리고 보좌 우편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든든한 사람은 세상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접대한 것도 결단코 그 상을 잊지 않겠다고(마 10:42) 약속하신 주님께서 주를 위한 일에 헌신하고 봉사한 것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기업을 잇게 하시니 이 산 소망 붙잡고 더욱 주의 일에 열심 하심으로 영원한 기업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약속하셨습니다.(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 말씀은 육신적으로 보지 않았으나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역시 순교자의 대부분이 육신적으로 주님을 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보지 못하나 믿고” 라는 것,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나 성령의 역사로 깨닫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소망으로 주셨습니다. “보이는 것은 그림자일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실체다”라고 신학자는 말했습니다. 우리의 보이는 육체(몸)이 실체인 것 같으나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정신 인격이 실체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보이는 세상이 실체가 아니라 세상 주관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실체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 6:63)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세상에 그 어떤 것(승진, 출세, 돈, 명예, 권세) 갖고도 누릴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은 사람의 그 어떤 조건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마치겠습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발전도 없고 험악한 세파를 이길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 신기루 같은 헛된 것에 소망을 두고 헛된 인생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산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으로 새 생명 주시겠다 하십니다. 주를 위한 삶에 그 모든 수고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기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된 즐거움과 기쁨을 주시겠다 하셨으니 이러한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 산 소망입니다. 산 소망 가지고 세상을 넉넉히 이겨 가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