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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목사 (대흥장로교회)
미네아폴리스에서 목회하시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쓴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라는 책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형이 있다고 말합니다. 심장박동형 그리스도인과 아드레날린형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흥분하게되면 분비되는 호르몬이 아드레날린인데, 이것은 금새 가라앉게 됩니다. 교회 안에는 이와 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천하를 다 감당할 것처럼, 목숨까지도 다 드릴 것처럼 했다가도 쉽게 식어버린 성도입니다. 한 순간에 힘이 넘쳤다가도 이내 지쳐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심장은 궂은 날이든, 즐겁든지 슬프던지, 남들이 감사하든지 말든지 묵묵히 겸손하게 계속해서 뛰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오늘은 피곤해서 하루 쉬어야겠어요... 당신이 나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모르니 한 시간만 파업입니다... 이러는 법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뛰는 것이 심장이듯 교회에도 이렇게 감당하는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일은 심장박동형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영국의 하원의원 가운데 한사람인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신앙의 땅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잘못된 것을 확신하고 싸워온 하원의원입니다. 1787년 10월 28일 28세였던 그의 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놓으셨다. 노예 매매 제도의 폐지와 도덕의 갱신이다” 그리고 그는 20년을 싸워왔습니다. 노예제도 폐지의 싸움은 영국 경제와 안락한 삶과 밀접한 관계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매년 패했습니다. 그리고 1807년 2월 24일 새벽4시에 마침내 찬성283표, 반대16표로 노예제도 폐지를 통과시켰습니다. 하원 의원 모두가 일어나서 기립 박수할 때에 키 작은 윌버포스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라고 전해집니다. 심장 박동형 그리스도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해 봐야 바위에 계란던지기라서 시작도 못하십니까? 인종 차별의 문제, 기아, 무지, 가난,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 범죄, 부정부패, 에이즈, 폭력 등... 이러한 문제는 나랑은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까? 우리 교회만 성장하고, 내 집만 잘 살면 이게 사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드레날린형 성도의 특징은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맘에 들면 하고 , 안들면 안 합니다. 그러나, 심장 박동형 성도는 주가 주신 힘으로 , 주가 주신 사명을 감당합니다. 20년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내 생각과 방법대로 되지 않는다고해서, 원망하고 포기하고 불평하는 아드레날린형 성도는 아니십니까?
요즘 “영적 은사 테스트”라고 해서 교회들마다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점도 있지만, 오히려 많은 혼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은사와 타고난 재능이 어떻게 다릅니까? 혼동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기 전인 사람이 은사 테스트를 하면 나오는 결과하고, 예수 믿고 난 후에 다시 테스트를 받는다면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타고난 재능이 예수 믿으면 영적 은사가 되는 것입니까? 재능은 나를 뽐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은사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나 개인과 나의 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 은사 테스트 결과 나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재정 담당을 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 영적 은사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내 재능 가지고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맡기시기도 합니다. 그러면, 재능 때문에 못합니다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반드시 주시는 영적 은사도 있는줄로 믿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해서 마태도 마가도 누가도 예수님의 외모에 대해서 ,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3:21-22에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누가복음4:1에 “ 성령의 충만함을 요단강에서 올라오서 광야에서 40일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4:14“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이끄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는대로....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베드로전서4:7-11까지는 종말이 가까웠음을 말씀하면서, 마지막 우리의 삶이 우리의 재능이나 육체적 모습을 내세우지 말고, 성령님의 역사하심대로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재능과 물질, 지식은 쉽게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주님 주시는 힘으로 삽시다. 예수님처럼 성령의 역사하심대로 사는 심장박동형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더욱 기도하고 사랑하라 (7-10절)
우리의 재능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성령님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더욱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7절을 봅시다.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에서, 헬라어로 “정신을 차리고” 는 “소프로 넵사테”입니다. 영어 성경에보면 “ be clear minded" 깨끗한 마음으로...”라고 썼습니다. 원어의 의미는 “소프로(불건전한 생각이 없는 것) + 넵사테(세상의 것들에 취하지 말고)” 역으로 생각하면, 기도의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불건전한 생각과 우리를 취하게 만드는 세상의 것들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취미와 물질의 욕심과 세상의 것들로 생각이 가득한데도 기도가 너무도 잘된다...고 하시는 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바둑을 열심히 두는 사람은 눈만 감고 기도하려고 하면 까만돌 하얀 돌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골프를 너무도 좋아하면 기도하려고 눈만 감아도 푸른 잔디위로 골프공이 날라가는 생각이 나는 겁니다. 신앙인이 바둑을 두고 골프를 치고 나쁜 것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고, 특히 기도에 방해가 된다면 뭐라도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한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하루에 사람의 마음을 혼동시키는 , 봐서는 안되고 들어서는 안 될 말들이 200번 이상 나온다고 합니다. 볼 것 다보고, 읽을 것 다 읽고는 기도가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정치 기사를 읽고 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기도가 안되고, 연예섹션을 읽고 나면 멀쩡한 사람도 헷갈리게 되어있습니다. 사회면을 읽고 나면 매일 엄청난 사건과 사고속에 기가막혀서 기도가 안되고... 경제면을 읽고나면 물가는 올라가고, 주식값 떨어져서 기도가 안되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살기를 원하시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합시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 기도로 시작하셨고, 밤이 맞도록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고, 내 힘으로 봉사하면 쉽게 지치고 , 목사에게도 실망스럽고 모두가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그래요.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분이 “목사님... 이런 문제는 좀 심각합니다...이런 점은 좀 안좋습니다...” 기도하는 분은 이렇게도 말씀하시지 않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두려운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자기 열심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들을만한 것이 별로 없어요. 저는 설교하면서 많이 느낍니다. 설교 준비를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설교하는 날은 별로 은혜가 안되요. 그런데 준비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잠이 잘 안와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자면서도 꿈에서도 기도하고.... 설교할 때에도 “성령님을 의지하고...” 서게 되면, 은혜가 되는 것을 봅니다.
미네트 드럼나이트 (SBC 해외 선교부)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은 10일간 기도하고, 10분만 설교했으나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10분간 기도하고 10일간 설교에 힘쓰지만, 아무런 변화도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재능과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성도에게 주신 최고 축복의 통로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르고자 할 때에, 아비와 가족과 배와 그물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만큼 열정을 가지고 따랐던 제자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시기를 사모하면서 변화산상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그냥 삽시다..” 라고 고백했던 제자입니다. 기사와 능력으로 병자도 고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심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언제부터 베드로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는가? 하면 오순절 다락방 성령 충만한 역사 이후였습니다. 그들이 한 곳에 모여서 기도할 때에 성령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로 베드로의 말씀에 3천명씩 회개하였고, 변함없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서로 대접하고, 서로 대접하며, 서로 봉사합니다. 서로라는 단어 속에는 “서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는 자는 “내 생각”이 강조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놓고 서양사람들은 감동을 받는 것이 꿈(vision)이지만, 동양 사람들은 “가족을 버리지 않는 끈끈한 사랑”입니다. 팬더곰, 원숭이, 바나나 이 세 개를 놓고 연관있는 것을 두 개 고르라고 하면, 동양 사람들은 관계성을 중요하게 여겨 “ 원숭이와 바나나”를 택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개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동물이라는 공통점 속에서 “팬더곰과 원숭이”를 당연히 고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 서로 인정하며 삽시다
2.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1절)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말에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두 가지 영역이 있는데 말과 봉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첫 번째 영역은 입술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 누가 말하려면...” (말- 랄레이 - 일반적인 모든 종류의 말들) 하나님의 말씀(로기아 -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계시)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랄레이를 로고스처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만한 우리의 입술은 공적이든, 사적인 자리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처럼, 성경처럼 말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12장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축복과 찬양은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축복의 마음이 찬양이고, 사람들을 향한 찬양의 마음이 축복입니다. 찬송과 저주는 한 입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3:8-10에 보면 “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는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우리의 입술로 부지런히 형제를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민수기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얼마나 우리 믿는자의 입술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민수기 24: 9의 약속 “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찌로다” 창세기 12:3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베드로전서3:9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하려 하심이라... 복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고 우리의 입술로 모든 형제와 이웃을 축복합시다. 시편109편17 “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다” 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만한 우리의 첫 번째 변화는 우리 입술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나갈 때마다 축복의 파송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로마서15: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정태기씨가 쓴 숨은 상처의 치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의대 심장학 교수였던 그가 7년간 학교를 휴직하고 세계를 다니며 그가 경험한 것을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심장학 교수도 자기 심장 마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급하게 인공호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 판단을 받았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붙이고 동료 교수들이 둘러선 가운데 주임교수가 사망진단을 내리고 하얀시트로 그 얼굴을 덮을 때에 그가 경험한 것입니다. 자기의 영혼이 미끄러지듯 빨려나가서 심판관들이 앉아있는 넓은 방에 자기가 앉아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차례로 질문하는데,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당신은 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까? 또 입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순간 자기의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펼처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입술로 고통스럽게 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4시간반만에 깨어났습니다. 그가 휴직을 하고 순회하며 전하는 핵심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심판 보좌 앞에 서면 제일먼저 우리의 입술의 열매를 계산하십니다.
3. 봉사로 하나님께 영광
또한,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헛된 수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봉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하면, 11절 중간에 “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봉사가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감당해야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공급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코레게이”로서 본래의 의미는 “합창하다 (코러스)라는 뜻이고, 본문에서는 조금도 아낌없이 주시듯”이라는 뜻입니다. 자기것으로 하는 것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과 가장 분명한 다른 점이 있다면 (1) 내 것으로 봉사하면 시간도 물질도 때때로 아깝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감당하면 자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감당하면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 내가 감당한 것에 대해서 자랑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의 것으로 감당하면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3) 내 힘으로 감당하면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는 아드레날린형 봉사가 됩니다. 그러나, 주가 주신 힘으로 감당하면 심장박동형 봉사가 됩니다. 이런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봉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할 때에 아낌없는 봉사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빌립보서3:3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3:17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고 말씀합니다. 제가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일을 성취한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욕망이 먼저 생기고 채워지는 즐거움이 있고 둘째는 전혀 욕망이 없이 그 자체로서 즐거움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침에 길을 걸으며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커피향이 나는 겁니다. 아침도 상쾌한데 커피냄새까지 덤으로 좋아진 것이 그 자체로 주어진 즐거움입니다. 욕망의 즐거움은 열심히 운동함으로 목이 점점 말라갈 때에 물한잔을 마셨으면 좋겠다... 그럴때에 한 잔의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습니다. 갈증을 느끼고 더위를 느껴서 물 한잔을 먹고 싶을 때에 아이스 생수와 샤워까지 제공을 받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마를 때에 물 한잔을 먹고 싶은 욕망의 만족도 10초만 지나면 끝입니다. 목마르다고 해서 100갤론의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두 컵의 물 이상을 마시라고하면 행복이 아니라 고문입니다. 또, 자연스러운 즐거움도 순간적입니다. 아무리 구수한 커피냄새도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가 전혀 다른 행복입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과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행복입니다. 내 것으로 내가 감당해서 얻는 행복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십니다. 먹고 마실 생선이나 알에 비교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봉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내속에 역사하셔서 그가 주신 힘으로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게 지치고 실망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할 때에 참된 행복과 열매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랄레이를 로기아로 주가 말씀하시듯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봉사도 주가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령님으로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네아폴리스에서 목회하시는 존 파이퍼 목사님이 쓴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라는 책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형이 있다고 말합니다. 심장박동형 그리스도인과 아드레날린형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흥분하게되면 분비되는 호르몬이 아드레날린인데, 이것은 금새 가라앉게 됩니다. 교회 안에는 이와 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천하를 다 감당할 것처럼, 목숨까지도 다 드릴 것처럼 했다가도 쉽게 식어버린 성도입니다. 한 순간에 힘이 넘쳤다가도 이내 지쳐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심장은 궂은 날이든, 즐겁든지 슬프던지, 남들이 감사하든지 말든지 묵묵히 겸손하게 계속해서 뛰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오늘은 피곤해서 하루 쉬어야겠어요... 당신이 나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모르니 한 시간만 파업입니다... 이러는 법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뛰는 것이 심장이듯 교회에도 이렇게 감당하는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일은 심장박동형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영국의 하원의원 가운데 한사람인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신앙의 땅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잘못된 것을 확신하고 싸워온 하원의원입니다. 1787년 10월 28일 28세였던 그의 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놓으셨다. 노예 매매 제도의 폐지와 도덕의 갱신이다” 그리고 그는 20년을 싸워왔습니다. 노예제도 폐지의 싸움은 영국 경제와 안락한 삶과 밀접한 관계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매년 패했습니다. 그리고 1807년 2월 24일 새벽4시에 마침내 찬성283표, 반대16표로 노예제도 폐지를 통과시켰습니다. 하원 의원 모두가 일어나서 기립 박수할 때에 키 작은 윌버포스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라고 전해집니다. 심장 박동형 그리스도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해 봐야 바위에 계란던지기라서 시작도 못하십니까? 인종 차별의 문제, 기아, 무지, 가난, 알코올 중독, 마약중독, 범죄, 부정부패, 에이즈, 폭력 등... 이러한 문제는 나랑은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까? 우리 교회만 성장하고, 내 집만 잘 살면 이게 사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드레날린형 성도의 특징은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맘에 들면 하고 , 안들면 안 합니다. 그러나, 심장 박동형 성도는 주가 주신 힘으로 , 주가 주신 사명을 감당합니다. 20년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내 생각과 방법대로 되지 않는다고해서, 원망하고 포기하고 불평하는 아드레날린형 성도는 아니십니까?
요즘 “영적 은사 테스트”라고 해서 교회들마다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점도 있지만, 오히려 많은 혼란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은사와 타고난 재능이 어떻게 다릅니까? 혼동하지 마십시오. 예수 믿기 전인 사람이 은사 테스트를 하면 나오는 결과하고, 예수 믿고 난 후에 다시 테스트를 받는다면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타고난 재능이 예수 믿으면 영적 은사가 되는 것입니까? 재능은 나를 뽐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은사의 가장 근본적인 정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나 개인과 나의 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 은사 테스트 결과 나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재정 담당을 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 영적 은사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내 재능 가지고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맡기시기도 합니다. 그러면, 재능 때문에 못합니다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반드시 주시는 영적 은사도 있는줄로 믿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해서 마태도 마가도 누가도 예수님의 외모에 대해서 ,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3:21-22에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누가복음4:1에 “ 성령의 충만함을 요단강에서 올라오서 광야에서 40일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4:14“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예수님의 공생애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이끄시고, 성령님이 역사하시는대로....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베드로전서4:7-11까지는 종말이 가까웠음을 말씀하면서, 마지막 우리의 삶이 우리의 재능이나 육체적 모습을 내세우지 말고, 성령님의 역사하심대로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재능과 물질, 지식은 쉽게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주님 주시는 힘으로 삽시다. 예수님처럼 성령의 역사하심대로 사는 심장박동형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더욱 기도하고 사랑하라 (7-10절)
우리의 재능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성령님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더욱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7절을 봅시다.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에서, 헬라어로 “정신을 차리고” 는 “소프로 넵사테”입니다. 영어 성경에보면 “ be clear minded" 깨끗한 마음으로...”라고 썼습니다. 원어의 의미는 “소프로(불건전한 생각이 없는 것) + 넵사테(세상의 것들에 취하지 말고)” 역으로 생각하면, 기도의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불건전한 생각과 우리를 취하게 만드는 세상의 것들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취미와 물질의 욕심과 세상의 것들로 생각이 가득한데도 기도가 너무도 잘된다...고 하시는 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바둑을 열심히 두는 사람은 눈만 감고 기도하려고 하면 까만돌 하얀 돌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골프를 너무도 좋아하면 기도하려고 눈만 감아도 푸른 잔디위로 골프공이 날라가는 생각이 나는 겁니다. 신앙인이 바둑을 두고 골프를 치고 나쁜 것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고, 특히 기도에 방해가 된다면 뭐라도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한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의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하루에 사람의 마음을 혼동시키는 , 봐서는 안되고 들어서는 안 될 말들이 200번 이상 나온다고 합니다. 볼 것 다보고, 읽을 것 다 읽고는 기도가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정치 기사를 읽고 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기도가 안되고, 연예섹션을 읽고 나면 멀쩡한 사람도 헷갈리게 되어있습니다. 사회면을 읽고 나면 매일 엄청난 사건과 사고속에 기가막혀서 기도가 안되고... 경제면을 읽고나면 물가는 올라가고, 주식값 떨어져서 기도가 안되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살기를 원하시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합시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 기도로 시작하셨고, 밤이 맞도록 새벽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고, 내 힘으로 봉사하면 쉽게 지치고 , 목사에게도 실망스럽고 모두가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그래요.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분이 “목사님... 이런 문제는 좀 심각합니다...이런 점은 좀 안좋습니다...” 기도하는 분은 이렇게도 말씀하시지 않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두려운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자기 열심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들을만한 것이 별로 없어요. 저는 설교하면서 많이 느낍니다. 설교 준비를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설교하는 날은 별로 은혜가 안되요. 그런데 준비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잠이 잘 안와요.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자면서도 꿈에서도 기도하고.... 설교할 때에도 “성령님을 의지하고...” 서게 되면, 은혜가 되는 것을 봅니다.
미네트 드럼나이트 (SBC 해외 선교부)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은 10일간 기도하고, 10분만 설교했으나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10분간 기도하고 10일간 설교에 힘쓰지만, 아무런 변화도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재능과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성도에게 주신 최고 축복의 통로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르고자 할 때에, 아비와 가족과 배와 그물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만큼 열정을 가지고 따랐던 제자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시기를 사모하면서 변화산상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그냥 삽시다..” 라고 고백했던 제자입니다. 기사와 능력으로 병자도 고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심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다 무너져버렸습니다. 언제부터 베드로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는가? 하면 오순절 다락방 성령 충만한 역사 이후였습니다. 그들이 한 곳에 모여서 기도할 때에 성령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로 베드로의 말씀에 3천명씩 회개하였고, 변함없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서로 대접하고, 서로 대접하며, 서로 봉사합니다. 서로라는 단어 속에는 “서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는 자는 “내 생각”이 강조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놓고 서양사람들은 감동을 받는 것이 꿈(vision)이지만, 동양 사람들은 “가족을 버리지 않는 끈끈한 사랑”입니다. 팬더곰, 원숭이, 바나나 이 세 개를 놓고 연관있는 것을 두 개 고르라고 하면, 동양 사람들은 관계성을 중요하게 여겨 “ 원숭이와 바나나”를 택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개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동물이라는 공통점 속에서 “팬더곰과 원숭이”를 당연히 고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 서로 인정하며 삽시다
2.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11절)
11절에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말에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두 가지 영역이 있는데 말과 봉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첫 번째 영역은 입술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 누가 말하려면...” (말- 랄레이 - 일반적인 모든 종류의 말들) 하나님의 말씀(로기아 -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계시)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랄레이를 로고스처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만한 우리의 입술은 공적이든, 사적인 자리에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처럼, 성경처럼 말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12장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축복과 찬양은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축복의 마음이 찬양이고, 사람들을 향한 찬양의 마음이 축복입니다. 찬송과 저주는 한 입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3:8-10에 보면 “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는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우리의 입술로 부지런히 형제를 축복하고 이웃을 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민수기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얼마나 우리 믿는자의 입술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민수기 24: 9의 약속 “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찌로다” 창세기 12:3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베드로전서3:9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하려 하심이라... 복되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고 우리의 입술로 모든 형제와 이웃을 축복합시다. 시편109편17 “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다” 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만한 우리의 첫 번째 변화는 우리 입술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나갈 때마다 축복의 파송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로마서15: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정태기씨가 쓴 숨은 상처의 치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 텍사스의대 심장학 교수였던 그가 7년간 학교를 휴직하고 세계를 다니며 그가 경험한 것을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심장학 교수도 자기 심장 마비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급하게 인공호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 판단을 받았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붙이고 동료 교수들이 둘러선 가운데 주임교수가 사망진단을 내리고 하얀시트로 그 얼굴을 덮을 때에 그가 경험한 것입니다. 자기의 영혼이 미끄러지듯 빨려나가서 심판관들이 앉아있는 넓은 방에 자기가 앉아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차례로 질문하는데,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당신은 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까? 또 입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순간 자기의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펼처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입술로 고통스럽게 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4시간반만에 깨어났습니다. 그가 휴직을 하고 순회하며 전하는 핵심이 이것입니다. 하나님 심판 보좌 앞에 서면 제일먼저 우리의 입술의 열매를 계산하십니다.
3. 봉사로 하나님께 영광
또한,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헛된 수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봉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하면, 11절 중간에 “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봉사가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감당해야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공급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코레게이”로서 본래의 의미는 “합창하다 (코러스)라는 뜻이고, 본문에서는 조금도 아낌없이 주시듯”이라는 뜻입니다. 자기것으로 하는 것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과 가장 분명한 다른 점이 있다면 (1) 내 것으로 봉사하면 시간도 물질도 때때로 아깝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감당하면 자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것으로 감당하면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 내가 감당한 것에 대해서 자랑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의 것으로 감당하면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3) 내 힘으로 감당하면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는 아드레날린형 봉사가 됩니다. 그러나, 주가 주신 힘으로 감당하면 심장박동형 봉사가 됩니다. 이런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봉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할 때에 아낌없는 봉사와 자신을 자랑하지 않는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빌립보서3:3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3:17 “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고 말씀합니다. 제가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일을 성취한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욕망이 먼저 생기고 채워지는 즐거움이 있고 둘째는 전혀 욕망이 없이 그 자체로서 즐거움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침에 길을 걸으며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커피향이 나는 겁니다. 아침도 상쾌한데 커피냄새까지 덤으로 좋아진 것이 그 자체로 주어진 즐거움입니다. 욕망의 즐거움은 열심히 운동함으로 목이 점점 말라갈 때에 물한잔을 마셨으면 좋겠다... 그럴때에 한 잔의 시원한 물을 마시면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습니다. 갈증을 느끼고 더위를 느껴서 물 한잔을 먹고 싶을 때에 아이스 생수와 샤워까지 제공을 받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목마를 때에 물 한잔을 먹고 싶은 욕망의 만족도 10초만 지나면 끝입니다. 목마르다고 해서 100갤론의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두 컵의 물 이상을 마시라고하면 행복이 아니라 고문입니다. 또, 자연스러운 즐거움도 순간적입니다. 아무리 구수한 커피냄새도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가 전혀 다른 행복입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과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행복입니다. 내 것으로 내가 감당해서 얻는 행복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십니다. 먹고 마실 생선이나 알에 비교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봉사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내속에 역사하셔서 그가 주신 힘으로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게 지치고 실망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할 때에 참된 행복과 열매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랄레이를 로기아로 주가 말씀하시듯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봉사도 주가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령님으로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