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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목사 (토랜스한인연합감리교회)
한 달 전 LA에 있는 서점들을 돌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던 중 어떤 기독교 서점에서 기독교문사에서 출간한 카타콤의 순교자라는 소설을 발견하고서 흥분된 마음으로 구입했습니다. 책을 구입하고서 함께 있던 교우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준 이후, 일주일 후에 그 책을 다시 돌려 받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가오는 감동이 얼마나 크던든지. . . 그 책을 읽는 동안 숨을 쉬기 조차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한 번 읽고 난 이후 곧바로 다시 한 번을 내리 읽었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때도 느껴온 감동은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읽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감동적으로 읽었던 이 소설의 절정 부분을 간추려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루세라스,] 나는 자네를 다정한 친구로서 좋아한다. 그리고 자네의 성실한 우정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의 마음 속에 자네에게 있어서는 알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라 전체의 모든 명예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그것은 신의 사랑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언제라도 모든 명예, 지위, 그리고 생명까지도 미련없이 버리련다. 나의 결심은 결단코 변하지 않는다. 나는 크리스챤이다.” (p.117).
루세라스, 자네에게는 나의 운명이 비참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와 같이 행복했던 적이 없었단 말이야. . . 루세라스, 나는 이 세상이 전혀 모르는 평화를 가지고 있다. 이 평화는 하늘로부터 부여되는 것이므로 이론 따위로는 알 수 없지. . . 그것[그러한 용기]은 신으로 부터 온 것이라네. 루세라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부귀와 명예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것이다. . . 죽을 때의 고통도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은] 나 자신 속에 있는 강한 신앙을 지우게 할 수는 없다.” (p.168, 169)
마침내 순교자는 그의 육체 속을 격렬하게 줄달음치는 아픔으로 인하여 꼼짝도 못하고 경련만 일으켰다.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그는 그 아픔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는 팔을 높이 들어 희미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최후로 그는 힘껏 큰 소리를 내어 외쳤다. “승리!” 이 외침과 함께 그의 생명은 끊겨져 간 것같이 보였다. 그것은 그의 몸 앞부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불길 속으로 머리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세라스의 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해 그럼으로써만 보람찬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듬뿍 안고 이 세상을 사라져갔던 것이다 (p.208, 209)
이것은 비록 소설의 일부분이라고 하지만 A.D. 249-251년에 데시우스 (Decius) 로마 황제에 의하여 자행된 잔인한 교회 핍박 때 지하 공동 묘지인 카타콤 안에서 신앙을 지키다 죽어간 손교자들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굳센 신앙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는대로 살고 믿는대로 죽을 각오로 다져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믿는대로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믿지 않고 있습니다.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되는 것은 믿고 손해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핑계로 믿기를 거부합니다.
카타콤의 순교자에 나오는 순교자들의 삶은 만들어낸 허구성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서신서들, 그리고 요한계시록를 통하여 숫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시는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소리쳐 말하였다. "보시오! 하늘이 열리고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 막으면서 스데반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고는 돌로 쳐죽이려고 그를 성밖으로 끌어냈다. 공증인들, 곧 사형 집행인들이 겉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놓았다. 그러나 돌들이 우박처럼 날아오는 속에서 스데반은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소서"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말을 남긴 뒤 그는 눈을 감았다. (사도행전 7:55-60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그대는 굳건히 서서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대가 맡은 사명을 다하시오. 내가 이렇게 당부하는 것은 그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오랫동안 어려운 싸움을 치러 오면서 주께 한결같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월계관이 하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내게 줄 월계관 말입니다. 이것은 내게만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열심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딤후 4:5-8 현대인의 성경)
나는 카타콤의 순교자와 성경에 언급된 그리스도인들의 순교 장면을 생각해 보면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자세를 한 단어로 “fierce in faith”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고상한 신앙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믿더라도 적당하게 믿는 것을 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5-16).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Be fierce in faith!” 믿기로 작정했다면, 믿는 자답게 화끈하게 믿으라는 요구입니다.
오, 디모데여, 그대는 하나님의 사람이니 모든 악을 피하여 옳고 선한 일에만 힘쓰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믿음을 위해서 싸우시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굳게 간직하시오. 이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대를 부르셨고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본디오 빌라도에게 조금도 두려움 없이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께서 그대에게 부여한 모든 사명을 수행하고 아무에게서도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복의 원천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적절한 때에 하늘에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고 만주의 주님이십니다. (딤전 6:11-15 현대인의 성경)
이 권면에서 엿볼 수 있는 점은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정도껏 알맞게 믿고 고상하게 행동하는 사역자가 되라 하지 않고 사도 바울 자신처럼 굳세게 서서 용맹하게 싸우는 사역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읽어보면서, 그리고 카타콤의 순교자들의 신앙생활을 읽어보면서, 나는 이런 희망을 갖습니다. “뜨겁게 불타오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I want to be a fierce Christian).” 사실 오늘 설교는 a fierce Christian 이 되길 원하는 희망을 어떻게 현실화 시킬 수 있을까 몇 일 동안 고민하면서 찾았던 지혜를 여러분에게 나누려고 준비했습니다.
첫째,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그리스도께 충성된 군사가 되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께 충성스러운 군사가 되려면 부단한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줄 모르고 또한 다가오는 고난을 뛰어넘을 줄도 모르는 연약한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영적전투에서 백전백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라”(5절 상반절)고 권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용맹스런 군사가 되고자 희망하는 자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훈련 과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해 치열한 영적전투에 뛰어 들 군사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의 군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개인의 편안함이나 만족을 포기했습니다. 돈, 명예, 가족, 조국까지 버려야만 했습니다. 서두에서 인용했지만, 카타콤의 순교자 마세라스는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그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서 언제라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생명까지 미련없이 버리겠노라 다짐하면서 자신의 결심은 결코 변치 않을 것이라고 친구 루세라스에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이렇게 당당하게 밝힙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자신 있게 세상을 향해 외치는 신자들이 필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카멜리온과 같은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때는 믿는 자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도무지 믿는 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신자들 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자신 있게 외쳐보기 바랍니다. 매일마다 거울을 보면서 외치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강렬하고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둘째,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맡겨진 전도 사명을 완성하려는 의욕으로 불타올라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정체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헌신할 군사입니다. 우리의 대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군사인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가서 온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큰 사명입니다. 반드시 반드시 이루어야만 할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전도인의 일을 하라” (5절 중반절). 우리 그리스도의 군사는 개인의 편안함을 살라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영혼들까지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낼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군사라 할 수 없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뜨겁지 아니 하다면, 우리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사명 감당하다가 전투 현장에서 순교할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의 시간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맞이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6절 상반절) 라는 구절은 “이제 내가 순교의 제물이 될 시간이 다가왔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순교할 시간이 매우 입박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그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교의 의지로 불타 있던 사도 바울 비롯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정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5:55-57).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 더욱 영광스러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순교를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습니다.
순교를 각오했다면, 어떠한 영적 전투 현장에 투여된다 할지라도 용맹하게 싸움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은 건들어 보았자 이득될 게 없다는 것을 사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 순교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사탄이 유혹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용맹스런 군사에게 있어서 사탄은 대적해서 배패시킬 존재이지 무서워 피할 존재가 아닙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사탄을] 대적하라.” (벧전 5:9).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넷째,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도중 다가오는 환란과 핍박을 죽는 순간까지 견고히 (fierce)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이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질주한 자들이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땅에서 무엇을 얻고자 그토록 열심을 내십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마감한 후 영원한 세계 즉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없다면, 이 땅의 고된 수고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 땅에서 적고 갖고,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사용하는 게 더욱 현명한 삶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계 22:20) 말씀하신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겠다 하신 주님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결혼식 준비를 끝낸 신부가 신랑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듯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이렇게 화답해야 합니다. “아멘.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한 달 전 LA에 있는 서점들을 돌면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던 중 어떤 기독교 서점에서 기독교문사에서 출간한 카타콤의 순교자라는 소설을 발견하고서 흥분된 마음으로 구입했습니다. 책을 구입하고서 함께 있던 교우에게 읽어보라고 빌려준 이후, 일주일 후에 그 책을 다시 돌려 받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가오는 감동이 얼마나 크던든지. . . 그 책을 읽는 동안 숨을 쉬기 조차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한 번 읽고 난 이후 곧바로 다시 한 번을 내리 읽었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때도 느껴온 감동은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읽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감동적으로 읽었던 이 소설의 절정 부분을 간추려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루세라스,] 나는 자네를 다정한 친구로서 좋아한다. 그리고 자네의 성실한 우정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나의 마음 속에 자네에게 있어서는 알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라 전체의 모든 명예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그것은 신의 사랑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는 언제라도 모든 명예, 지위, 그리고 생명까지도 미련없이 버리련다. 나의 결심은 결단코 변하지 않는다. 나는 크리스챤이다.” (p.117).
루세라스, 자네에게는 나의 운명이 비참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와 같이 행복했던 적이 없었단 말이야. . . 루세라스, 나는 이 세상이 전혀 모르는 평화를 가지고 있다. 이 평화는 하늘로부터 부여되는 것이므로 이론 따위로는 알 수 없지. . . 그것[그러한 용기]은 신으로 부터 온 것이라네. 루세라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부귀와 명예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것이다. . . 죽을 때의 고통도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은] 나 자신 속에 있는 강한 신앙을 지우게 할 수는 없다.” (p.168, 169)
마침내 순교자는 그의 육체 속을 격렬하게 줄달음치는 아픔으로 인하여 꼼짝도 못하고 경련만 일으켰다. 그러나 신앙의 힘으로 그는 그 아픔을 정복했다. 그리고 그는 팔을 높이 들어 희미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최후로 그는 힘껏 큰 소리를 내어 외쳤다. “승리!” 이 외침과 함께 그의 생명은 끊겨져 간 것같이 보였다. 그것은 그의 몸 앞부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불길 속으로 머리를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세라스의 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해 그럼으로써만 보람찬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듬뿍 안고 이 세상을 사라져갔던 것이다 (p.208, 209)
이것은 비록 소설의 일부분이라고 하지만 A.D. 249-251년에 데시우스 (Decius) 로마 황제에 의하여 자행된 잔인한 교회 핍박 때 지하 공동 묘지인 카타콤 안에서 신앙을 지키다 죽어간 손교자들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굳센 신앙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는대로 살고 믿는대로 죽을 각오로 다져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믿는대로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믿지 않고 있습니다.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되는 것은 믿고 손해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핑계로 믿기를 거부합니다.
카타콤의 순교자에 나오는 순교자들의 삶은 만들어낸 허구성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서신서들, 그리고 요한계시록를 통하여 숫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시는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소리쳐 말하였다. "보시오! 하늘이 열리고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 막으면서 스데반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고는 돌로 쳐죽이려고 그를 성밖으로 끌어냈다. 공증인들, 곧 사형 집행인들이 겉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놓았다. 그러나 돌들이 우박처럼 날아오는 속에서 스데반은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소서"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말을 남긴 뒤 그는 눈을 감았다. (사도행전 7:55-60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그대는 굳건히 서서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대가 맡은 사명을 다하시오. 내가 이렇게 당부하는 것은 그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오랫동안 어려운 싸움을 치러 오면서 주께 한결같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졌습니다. 월계관이 하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내게 줄 월계관 말입니다. 이것은 내게만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열심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 (딤후 4:5-8 현대인의 성경)
나는 카타콤의 순교자와 성경에 언급된 그리스도인들의 순교 장면을 생각해 보면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자세를 한 단어로 “fierce in faith”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고상한 신앙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믿더라도 적당하게 믿는 것을 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 3:15-16).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Be fierce in faith!” 믿기로 작정했다면, 믿는 자답게 화끈하게 믿으라는 요구입니다.
오, 디모데여, 그대는 하나님의 사람이니 모든 악을 피하여 옳고 선한 일에만 힘쓰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믿음을 위해서 싸우시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굳게 간직하시오. 이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대를 부르셨고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본디오 빌라도에게 조금도 두려움 없이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께서 그대에게 부여한 모든 사명을 수행하고 아무에게서도 비난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복의 원천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적절한 때에 하늘에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고 만주의 주님이십니다. (딤전 6:11-15 현대인의 성경)
이 권면에서 엿볼 수 있는 점은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정도껏 알맞게 믿고 고상하게 행동하는 사역자가 되라 하지 않고 사도 바울 자신처럼 굳세게 서서 용맹하게 싸우는 사역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읽어보면서, 그리고 카타콤의 순교자들의 신앙생활을 읽어보면서, 나는 이런 희망을 갖습니다. “뜨겁게 불타오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I want to be a fierce Christian).” 사실 오늘 설교는 a fierce Christian 이 되길 원하는 희망을 어떻게 현실화 시킬 수 있을까 몇 일 동안 고민하면서 찾았던 지혜를 여러분에게 나누려고 준비했습니다.
첫째,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그리스도께 충성된 군사가 되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께 충성스러운 군사가 되려면 부단한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줄 모르고 또한 다가오는 고난을 뛰어넘을 줄도 모르는 연약한 신앙인이라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영적전투에서 백전백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라”(5절 상반절)고 권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용맹스런 군사가 되고자 희망하는 자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훈련 과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해 치열한 영적전투에 뛰어 들 군사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의 군사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개인의 편안함이나 만족을 포기했습니다. 돈, 명예, 가족, 조국까지 버려야만 했습니다. 서두에서 인용했지만, 카타콤의 순교자 마세라스는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그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서 언제라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생명까지 미련없이 버리겠노라 다짐하면서 자신의 결심은 결코 변치 않을 것이라고 친구 루세라스에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이렇게 당당하게 밝힙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자신 있게 세상을 향해 외치는 신자들이 필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카멜리온과 같은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때는 믿는 자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도무지 믿는 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신자들 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자신 있게 외쳐보기 바랍니다. 매일마다 거울을 보면서 외치기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강렬하고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둘째,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맡겨진 전도 사명을 완성하려는 의욕으로 불타올라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정체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헌신할 군사입니다. 우리의 대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군사인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가서 온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큰 사명입니다. 반드시 반드시 이루어야만 할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전도인의 일을 하라” (5절 중반절). 우리 그리스도의 군사는 개인의 편안함을 살라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영혼들까지 사탄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낼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군사라 할 수 없습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뜨겁지 아니 하다면, 우리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사명 감당하다가 전투 현장에서 순교할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의 시간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서 맞이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6절 상반절) 라는 구절은 “이제 내가 순교의 제물이 될 시간이 다가왔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순교할 시간이 매우 입박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그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교의 의지로 불타 있던 사도 바울 비롯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정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 15:55-57).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 더욱 영광스러운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순교를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겼습니다.
순교를 각오했다면, 어떠한 영적 전투 현장에 투여된다 할지라도 용맹하게 싸움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은 건들어 보았자 이득될 게 없다는 것을 사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 순교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사탄이 유혹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용맹스런 군사에게 있어서 사탄은 대적해서 배패시킬 존재이지 무서워 피할 존재가 아닙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사탄을] 대적하라.” (벧전 5:9).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넷째, fierce Christian이 되려면,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는 도중 다가오는 환란과 핍박을 죽는 순간까지 견고히 (fierce)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이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질주한 자들이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땅에서 무엇을 얻고자 그토록 열심을 내십니까? 하지만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마감한 후 영원한 세계 즉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없다면, 이 땅의 고된 수고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이 땅에서 적고 갖고,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사용하는 게 더욱 현명한 삶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계 22:20) 말씀하신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겠다 하신 주님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결혼식 준비를 끝낸 신부가 신랑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듯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이렇게 화답해야 합니다. “아멘.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