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익수 교수

안식일에 손마른 자를 고치심(3:1-6)

본문읽기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본문해석

이 단락은 예수께서 2:23-28에서 말씀하신 내용, 즉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기 위하여 그가 인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어떤 행동을 또 하는가를 지켜보는 가운데(2절), 예수께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마른 사람에게 일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3절). 그리고 오히려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질문하고(4절), 병자에게 "손을 내밀어라"라고 말씀하신다(5절). 이때 바리새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병자는 고침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이 단락은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헤롯당과 함께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습니다.

문제1) 이 단락에서 무슨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습니까?

이 단락은 예수의 치유하심만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율법(안식일 계명)과 관계된 종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문제2) 예수께서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거기에서 한쪽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를 고소하려고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의 "사람들"은 누구입니까?(6절 참조).

문제3) 당신은 현대의 '바리새인들'은 어떠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예배나 율법에 대한 관심보다는 예수를 고발하기 위해 그가 안식일 계명을 범하는지의 여부에만 관심을 갖고 그를 엿보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도 예수께서 이적을 일으키실 것을 알았고, 확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인간 사랑의 한 표현인 이적'보다는 종교적 계명의 준수여부에만 관심 갖고 여차하면 고소하려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진정한 신앙은 제쳐놓고 문자주의, 교조주의, 형식주의에 얽매인 '껍데기 뿐'인 종교인들의 한 전형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보다는 종교와 교리를 앞세워 사람을 억압하고 심판하는데만 열을 올리는 현대의 보수적인 교조주의자들인 셈입니다.

문제4) 예수께서는 손 마른 사람에게 "한 가운데 일어서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회당에 모여있는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한 내용을 찾아 써 보십시요(4절).

예수께서는 사람을 돕는 선한 행위를 목숨을 구하는 것과 같이 간주하심으로써 안식일에도 허락되어야 한다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이라 해서 남을 돕지 않는 것은 오히려 목숨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하다고 여기심으로써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문자적이고 편협한 이해를 능가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입장에서 볼 때,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고, 생명을 구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는 안식일이라 해서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인데, 이러한 악을 행할 수 없다고 확언하시는 것입니다.

문제5) 예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왜 "잠잠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그들은 예수의 주장이 옳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오만과 편견, 아집 때문에 예수께 굴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의 주장에 직접적으로 저항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의 주장에 동감했을 것이며, 그들조차도 무엇이 옳은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잠잠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문제6)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완악한 마음을 근심하시고 분노하셨습니다. 왜 분노하셨습니까?

율법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의를 열심히 추구하던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뜻밖에도 하나님과 율법의 참뜻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두워진 눈과 닫힌 귀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의 말씀과 이적을 듣고 보면서도 그 분이 바로 자신들의 메시야요, 그리스도인이신 줄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통박하신 것은 그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밀 것을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직접 인간들의 모든 종교적 형식과 규례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새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7) 회당 안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바리새인들은 나가서는 무슨 일을 논의합니까?(6절)

사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모두 보수적이라는 점에서만 공통적이고, 전자는 종교적이라면, 후자는 정치적이라는 전혀 다른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함께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게 된 예수, 곧 메시야를 죽이는 일에는 기꺼이 손을 잡았습니다. 여기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결탁하여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 것은 종교적인 세력과 정치적인 세력 모두가 합세하여 예수를 대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논의해 보십시오.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특정 인물이나 믿음의 실천성을 주장하는 교회나 단체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십시오.

몰려드는 많은 무리와 예수의 치유(3:7-12)

본문읽기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많은 사람이 따라왔다. 또한 유대와 8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그리고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가 하신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듣고, 그에게로 몰려왔다. 9 예수께서는 무리가 자기에게 밀려드는 혼잡을 피하시려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여 작은 배 한척을 마련하게 하셨다. 10 그가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으므로, 온갖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악한 귀신들은 예수를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서 외쳤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2 그러면 예수께서는 "나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아라"하고,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셨다.

본문해석

이 단락은 1:16-3:6을 요약하고, 또한 3:13-6:6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갈릴리 선교를 요약하고, 예수께서 행하실 또 다른 선교를 계획해 주고있는 것입니다.

문제8) 예수의 일행이 바다로 물러났으나, 여러 도시들에게 많은 무리들이 여전히 예수께 나아 왔다는 보도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마가복음에서 "바다"(호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교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다로 물러가시니"는 이 요약문이 예수에 대한 무리의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도시에 있는 정치적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들을 떠나 바닷가의 예수께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나아 와서 자신들의 곤궁한 처지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문제9)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당부하셨습니까?

많은 무리들이 예수께 나아 온 것은 첫째, 예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이며(10절), 둘째로는 더러운 귀신들도 예수를 보기만 하면 그 앞에 넘어지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고 소리쳤기 때문입니다(11절). 귀신들이 예수 앞에 "엎드려" 부르짖었다는 것은 예수께 대한 헌신의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몸짓입니다. 때가 되기 전에 운명지어진 고통에 던져질까 두려워하는 비열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으로써 그들이 해를 입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귀신들에게 "자신을 아무에게도 나타내지 말라"고 침묵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메시야 비밀에 대한 언급으로 1:25, 34과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그러나 1:25에서는 "입을 다물고 떠나라"고 명령하셨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메시야 비밀에 대해서 침묵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귀신들을 완전히 제압하셨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를 택하심(3:13-19)

본문읽기

13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시니, 그들이 예수께로 나아왔다. 14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15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예수께서 열둘을 임명하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덧붙여 주신 시몬과, 17 '천둥의 아들'을 뜻하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덧붙여 주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과, 18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와 열혈당원 시몬과, 19 예수를 넘겨준 가룟 유다이다.

본문해석

마가복음의 저자에게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곧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그 당시 사회와 가족들의 오해로 인한 모든 고통스러운 상황을 감내하고 신앙을 고수하겠다는 결단의 의지로 이해된 것입니다.

문제10) 이 단락의 배경은 어느 곳으로 소개되고 있습니까?(13절)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였던 예수는 이제 "한적한 산"에 오르셔서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기서 '산'은 예수의 주권(主權, sovereignity)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산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구속의 행위를 나타내시는 장소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12제자들을 세우시는 장소로 '산'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가 주권적인 권위로 제자들을 부르셨다는 것과 12제자로 선택받은 자들은 그만큼 중요하고 권위있는 직임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문제11) 13절에 의하면, 12제자들은 스스로 자원한 자들입니까? 아니면 예수께서 선택하신 자들입니까?

"자기의 원하는 자들"이란 특별히 예수의 마음에 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단순히 병 고침을 받고자 몰려 든 무리들과는 철저하게 구별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자원한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의 절대적인 의지, 즉 주권적인 권위에 의해서 선정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예수께서 선택하신 후에만, 예수를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결단만하면 되는 것입니다(참조. 요 15:16).
제자들이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나아온" 것은 예수의 명령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복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즉각적인 순종의 자세는 1:16-20에서도 즉시 따라 나섰던 제자직의 특징적인 성격과 일치합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예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곧 자신들이 하던 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문제12) 예수께서는 몇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13- 14절)

제자들 "12명"이라는 숫자(마19:28;눅22:30)는 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열두 제자는 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의 대표자들을 상징합니다.
예수께서 12제자들을 부르신 첫 번째 목적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예수 곁에서 경험케 하고자 함입니다. 이는 또한 제자들을 교육시키시고, 훈련시키시려는 예수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제자들은 모름지기 예수 그리스도와의 끊임없는 교제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그들을 보내사 전도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그들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세상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세상에 뛰어 들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선포야말로 제자들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목적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좁은 의미로 "귀신을 내어쫓음"은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예증해 줄 수 있었던 특별한 능력으로 복음 전도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로는 예수께서 이 땅에 실현시키시려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과 확장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섬기는 세력, 곧 마귀이거나 하나님께 종노릇을 하게 되어 있고, 또한 그가 속한 세계, 곧 세상이거나 하나님의 나라, 혹은 육에 속하거나 영에 소속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반대개념은 곧 마귀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되는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 예수께서는 복음을 함께 전파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큰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족들의 오해(3:20-21)

본문읽기

20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서, 예수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21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본문해석

예수께서 다시 집에 돌아오시자 예수의 가족들이 이 소식을 듣고 예수를 붙들러 나왔음은 이 집이 확실히 예수의 본가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 집이 본가라면 그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그를 찾아올리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예수의 친족들은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문밖에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불렀다는 점(31절)을 생각해 보면 예수의 가족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가족들은 "예수가 미쳤다'는 악의에 찬 나쁜 소문을 듣고서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미치는 것은 귀신이 들렸다는 증거였고, 따라서 이 말은 예수께서 귀신들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오해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의 가족들도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과 똑같이 예수를 오해하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복음서 저자는 당시의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오고 오는 세대에게도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들로부터 오해와 배척을 받는 것(13:12)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