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익수 교수

하나님 나라와 들음의 축복(4:10-12)

본문읽기

10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의 주위에 둘러 있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게, 그 비유들이 무슨 뜻인지를 예수께 물었다. 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12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본문해석

사실 비유는 어떤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교육 방법인데, 본문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오히려 이 비유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감추려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예수께서 어떤 사실을 감추기 위해 비유를 사용하셨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마가복음 저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황과 관련해서 공동체의 특권과 정통성을 내세우려는 의도적인 편집으로 보여집니다.
본문의 내용이 마가복음 저자의 편집 작업의 결과라고 해서 말씀의 권위나 의미가 변질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예수의 비유를 마가복음 저자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신앙 교육을 위해 사용하였듯이, 우리도 역시 복음서 저자들이 해석해 놓은 비유를 우리 교회가 당면한 현실 속에서 다시 이해하고 재해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1) 당신은 실제로는 예수께서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가복음의 저자는 왜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역사적 예수께서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파멸 이후 광야에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며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하는 마가복음 저자는 "구약의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심판에 대한 예언을 자신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바깥 사람들"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외인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나타냄과 동시에 저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받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이미 예루살렘에서 내려 온 서기관들에게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3:29)로 자신의 적개심을 표현한 바 있는데, 여기의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와도 평행 되는 말씀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해석(4:13-20)

본문읽기

13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이해하겠느냐? 14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길가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말씀이 뿌려질 때에 그들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16 돌짝밭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17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18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달리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에 다른 일의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좋은 땅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본문해석

씨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의 원래 교훈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선포되기 시작한 하나님 나라는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반대 속에서도 미래의 완성을 위해 숨쉬고 있으며, 모든 난관과 방해가 있는 바로 이 세상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미래의 큰 수확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숨겨진 나라이며, 그 나라의 현존의 표식들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비유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저자에 의한 편집과정을 거치면서 이 비유에 대한 종말론적인 색조는 사라지고, 씨 뿌리는 자, 즉 복음 전파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교회 안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갖가지 반응과 마음 상태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교하는 초대교회의 관심을, 곧 교회가 선포하고 있는 복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양하게 반응하던 교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한편, 어떤 사람은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고, 어떤 사람은 돌짝 밭에, 어떤 사람은 가시밭에 떨어진 씨와 같이 반응하고, 다른 한편 오직 일부의 사람들만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처럼 복음을 받아들이니 그 결과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질문2) 예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설명하시기 전에 먼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이해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모든 비유를 이해하겠느냐?"라는 말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가장 알기 쉬운 비유인데, 이렇게 쉬운 비유도 잘 알지 못하면 어떻게 다른 비유를 알 수 있겠느냐는 의미입니다. 이 비유를 모르고 있으니 다른 비유들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제자들도 예수의 가족이나 서기관들처럼 무지와 오해에 빠질 위험이 있는 자들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3) '말씀'을 "뿌리는 사람"은 누구를 지칭한 것입니까?"

궁극적으로는 인자, 곧 예수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 또한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질문4) 예수의 '씨가 길가에 떨어졌다'는 말씀(4절)이 초대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습니까?(15절)

"새"는 '사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받아들인 말씀을 사탄이 빼앗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사람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교회생활과 연관시켜 보면, "길 가"란 온갖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단단해진 길바닥처럼, 온갖 전통, 사상, 경험, 선입견, 다른 관심, 그리고 죄악들로 인해 마음이 완악해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질문5) 예수의 '씨가 돌밭에 떨어졌다'는 말씀(5-6절)은 초대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습니까?(16-17절)

처음에는 기쁘게 복음을 받아들이지만 믿음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처음 시련에 부딪치자마자 변덕스럽게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여기에는 기회주의적인 사람이란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이미 겪기 시작했던 환난과 박해는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중단케 했을 것입니다.

질문6) 예수의 '씨가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말씀(7절)은 초대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습니까?(18-19절)

이 해석은 박해와 환란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배교하게 되는 주요 원인을 '내적인 동요'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생활에 대한 염려가 말씀을 막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악한 세상의 때는 묵시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재물의 쾌락, 또는 속임과 다툼, 욕심이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장애요인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재물은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의 큰 장애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질문7) 예수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에 대한 말씀(8절)은 초대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습니까?(20절)

선포하고 있는 복음에 대하여 일부의 사람들만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처럼 놀라운 열매 맺고 있다는 것이다.

적용을 위한 질문

♣ 당신은 자신을 위의 밭에 대한 설명들 중에 어느 곳에 뿌려진 씨로 생각되십니까?

♣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은 그 말씀이 모두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은 결코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아닌 것 같다고 판단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들음에 대한 권고(4:21-25)

본문읽기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다가 말 아래에나, 침상 아래에 두겠느냐? 등경 위에다가 두지 않겠느냐? 22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23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25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본문해석

이 단락은 두 개의 내용들, 즉 21-22절의 '등불비유'와 24b-25절의 '헤아림에 대한 권고'가 결합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결합을 좀더 매끄럽게 연결시킬 목적으로 23-24a절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를 삽입시키고 있습니다. 특별히 23-24a절에는 듣는다고 해서 다 깨닫는 것은 아니라는 마가복음 저자의 주요사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등불에 대한 이 말씀은 토기로 만든 기름 등잔 하나로 불을 켜는 팔레스틴의 조그만 집을 연상케 합니다. 이 등잔은 긴 다리가 있는 쇠 받침대 위에 놓여져서 집안을 밝게 합니다. 등불은 본래 환히 밝혀서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게 하기 위함이지 말 아래 두기 위해, 다시 말해서 등불을 감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등불"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등경 위에 둠"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도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이지 언제까지나 숨기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께 도래한 하나님 나라도 현재는 숨겨져 있지만 결국은 드러나고야 말 것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당시의 대다수의 사람들 눈에는 감추어져 있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리는 "파루시아", 즉 그리스도의 오심이 멀지 않은 장래에 모든 사람들에게 밝히 드러나고야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숨겨진 것은 결국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예수께서 메시야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가 세상에 알리려 했던 하나님 나라도 교회의 복음선포를 통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질문8) 23-24a절의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 들어라."는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마가복음 저자가 삽입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의도하고 이러한 내용을 삽입했겠습니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는 명령은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사람들만 이해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전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육신의 귀가 있다고 누구나 다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적인 귀, 즉 신령한 귀를 가진 자만이 듣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새겨 들어라" 즉 "너희는 조심하여 들어라"는 4:13-20에서처럼 이 말씀을 듣는 청중들의 태도를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24b절의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는 듣는 사람의 태도에 비례할 뿐 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이해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기울인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은 계시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느냐는 것입니다.

질문9) 예수께서는 결론적으로 25절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자기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일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그 선물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형편이 전보다 더욱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올바른 태도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 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느낌, 생각, 체험을 통하여 늘 대화하시되, 앞의 수단들로도 충분히 교류되지 않을 때는 가장 비효율적인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전자가 너무 주관적이라면, 후자는 잘못된 해석이나 오해의 소지가 많지요. 조용히 하나님과 대화하는 법을 익혀두시면 엄청난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