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익수 교수

예수의 십자가 처형(15:20b-41)

십자가 처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에게는 먼저 태형이 집행되었고, 죄수는 십자가나 횡목을 메고 도시 밖으로 나가서 못 박혔습니다. 이 때 죄수는 알몸으로 팔을 벌린 채 횡목에 못 박혔고, 형리는 이 횡목을 수직으로 세운 기둥에 못박았습니다. 죄인은 못 박히거나 결박되어서 매달렸고, 기둥에 부착되어 있는 받침대에 의해서 빨리 죽지도 못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치욕으로 인해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천 가지의 죽음으로 죽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형은 맹수의 밥이 되는 것과 함께 가장 치욕스런 처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대역죄를 지은 폭도, 탈영한 군인, 성전 강도와 같은 중죄인들이 십자가형을 당했고, 지방에서는 총독이 통치권과 형법에 따라서 십자가형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 대역죄의 경우 유대인에게도 십자가형이 선고될 수 있었습니다.
15:20b-41절은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형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지셨으며, 어떻게 못 박히셨는지, 주변 누구와 무슨 말을 했는지 등을 자세하게 보도해 줍니다. 특별히 복음서 저자는 그의 공동체가 잘 아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간 사실을 보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 갈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15:20b-32)

① 본문 읽기

20b 그런 다음에,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21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길에,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22 그들은 예수를 골고다란 곳으로 데리고 갔다. (골고다는 번역하면 '해골 곳'이다.) 23 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께 드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24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제비를 뽑아서,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를 결정하였다. 25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26 그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다. 27 그들은 예수와 함께 강도 두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하나는 그의 오른쪽에, 하나는 그의 왼쪽에 달았다. (28절 없음) 29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를 모욕하며 말하였다. "아하!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30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무나!" 31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함께 그렇게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도 그를 욕하였다.

② 본문 해석

질문1) 그리고 그곳을 지나던 누구를 지목하여 무슨 일을 하게 했습니까?(21절)
군인들은 예수를 처형시키기 위해서 도성 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를 끌고 가는 도중에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을 지명하여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은 처형장까지 자신이 처형당할 십자가를 끌고 가야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군인들은 자기들의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강제 징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관례에 따라서 주변을 지나던 시몬을 지목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시몬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것입니다.

질문2) 예수께서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23절)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 몰약을 탄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몰약은 마취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몰약을 탄 포도주는 고통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마취제였습니다. 유대교의 관습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귀부인들이 이런 마취제를 사형 당하는 이들에게 제공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하셨는데, 이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수난의 길을 가시기로 스스로 결정하셨기 때문에(10:32-33), 십자가에 이르는 고난을 감수하시려는 의연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는 또한 14장 25절의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이 됩니다.

질문3)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내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의 죽음은 로마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하나의 평범한 사건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죄인을 십자가에 처형한 것은 로마제국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십자가의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구원의 길이 십자가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반역에 대해서 어떤 해답을 마련해 주셨는데, 그 해답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십자가에서 짊어지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아담으로부터 시작한 불순종의 역사를 뒤집어놓았습니다(롬 5:12-21).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죄인인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받아들여지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핵심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질문4) 예수의 죄패에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었습니까?

십자가형을 당할 때 죄수들이 죄명을 기록한 명태를 앞에 들거나 목에 걸게 한 것은 처형자의 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죄패는 그가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당하는 것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죄패에 기록된 죄목은 분명히 예수를 조롱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으며, 또한 앞으로 로마에 대항해서 모반을 꾀할 마음이 있는 유대인들에게 무서운 경고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역설적으로 이 죄패는 예수께서 진실로 유대인의 메시야요, 왕 되심을 알리게 된 사실입니다.

질문5) 예수의 십자가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를 모욕했습니까? 예레미야 애가 2장 15절을 찾아 써 보십시오.

예수는 성밖에서 처형되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그 장면을 볼 수 있었고,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모욕하고 비웃었는데, 특히 자기 머리를 흔드는 행동은 조롱의 몸짓이었습니다(시 22:6-8 ; 109:25 ; 사 37:22 ; 렘 18:16 ; 욥 16:4). 예레미야애가 2장 15절에는 "지나가는 모든 나그네들이 너를 보고서 손뼉을 치며, 도성 예루살렘을 보고서 머리를 내저으며 빈정거리며…"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질문6) 지나가는 이들은 예수를 누구라고 부르며,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던 사람아"라고 부르며,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려무나"라고, 즉 예수께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기적을 베풀라고 도전합니다. 이들의 행동은 하나님께 의인을 구원하시지 않겠느냐고 따지는 적대자들의 행동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산헤드린에서 재판 받을 때, 적대자들이 문제삼은 발언도 바로 이 성전 파괴에 관한 문제였습니다(14:58).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 대한 비난도 바로 예수의 성전파괴의 말씀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의 사역이 유대교와 마찰을 빚은 부분이 바로 "성전"에 관한 이해의 차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교의 신앙생활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는데, 이를 헐겠다는 예수의 말씀이 그들을 크게 자극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눈에 보이는 성전만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중심이 되면, 그 종교는 마침내는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전락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제도와 의식으로 제한하고 생명력 없는 교조주의적 신앙생활에 빠지게 되는 것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손으로 짓지 아니란 성전을 지으리라는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도 유대인들로부터 똑같은 오해를 받았는데(행6:13-14), 오늘날도 보이는 "성전"을 중요시하는 교조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를 철저히 따르려는 사람들을 십자가에 처형하거나 출교시키곤 합니다.

질문7)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어떻게 조롱하였습니까?(31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지나가는 이들의 요구를 부추기며 예수께서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고 조롱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 칭한 것을, 자신들에게 더 적절한 표현인 "이스라엘의 왕"으로 바꾸어 부르며,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라고 예수를 시험하며 조롱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의 직접 행한 기적들로는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이제 직접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그 능력을 우리들에게 보여달라는 도전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지막 표적을 요구하는 적대자의 요구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질문8)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예수를 어떻게 대했습니까?(32절)

강도들은 처형 받을 만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범죄자들조차도 예수를 욕보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으셨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두 강도 중에 하나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구원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23:40).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사람들에게서는 배척과 버림을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이 땅에서 가르치신 말씀과 행하신 역사도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산헤드린 공회와 빌라도의 잘못된 재판으로 처형된 십자가 위에서도 지나가는 자들에게(29절),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31절),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둘에게(32절) 조차 조롱을 당하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버렸고 조롱과 조소를 보낸 것입니다. 마가복음서에는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이처럼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과 조롱을 받게 될 때, 견디고 이겨내야 함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심(15:33-41)

① 본문 읽기

33 낮 열두 시가 되었을 때에,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 되었다. 34 세 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그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다. 3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보시오,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36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푹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였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두고 봅시다." 37 예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지셨다. 38 (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39 예수를 마주 보고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40 여자들도 멀찍이서 지켜 보고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도 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고 살로메도 있었다. 41 이들은 예수가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라다니며 섬기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② 본문 해석

33-41절은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장면과 그의 죽으심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38절의 성전휘장이 찢어짐은 성전제의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을 표현합니다. 성전제의의 효력상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9) 예수가 운명하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습니까?(33절)

제 육시(정오)로부터 구시에 이르기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는데, 이는 우주적인 기적을 의미합니다. 아모스는 일찍이 여호와의 날에 정오에 어두움이 있을 것이며, 이 어두움은 목자를 위한 애도의 어두움이라고 했습니다(8:9).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어두움이 온 땅을 덮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예수의 죽음이 곧 종말론적이고 우주적인 성격을 지닌 것을 의미합니다.

질문10) 예수께서는 운명하시기 직전에 무슨 말씀을 하셨으며, 그 뜻은 무엇입니까?(34절)

예수는 시편 22편 1절을 인용하여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를 크게 소리지르셨습니다.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한 말씀이 마가복음에 나오는 유일한 십자가 위에서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탄식시이면서도 감사시인 시편 22편을 인용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마침내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듯한 고독의 심연에서도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것을 안도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 중에 있던 신앙공동체는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거나 형장에 끌려갈 때,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인데, 복음서 저자는 십자가상에서 절규하는 예수를 보도함으로써, 절망과 비극 저편에서 동터오는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케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질문11) 십자가 곁에 섰던 자들은 예수의 외침을 어떻게 오해했습니까?(35절)

곁에 있던 사람들 중에 몇몇은 예수가 엘리야를 불렀다고 말함으로써 이 기도를 왜곡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어려움에 처한 의인을 엘리야가 구원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임이 분명한 사람들이 '엘로이'와 '엘리야'를 혼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저들은 의도적으로 예수의 외침을 왜곡해서 예수의 기도를 조롱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질문12) 마가복음서에는 예수의 운명하심과 동시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본문에는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두 쪽이 된 사건이 예수의 운명과 동시에 보도됩니다. "성전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구분하는 휘장으로서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휘장을 열고 지성소로 들어가서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칸막이'(출 26:33)로 사용되고, '가리울 휘장'(출 35:12 ; 40:21 ; 민 4:5)으로 불리우며 법궤를 가리기도 했습니다(출 30:6 ; 40:3).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부정적으로는, 예수의 죽음과 더불어 성전과 성전제의가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예시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긍정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제사장이 아닌 사람들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누구에게나 직접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모든 사람들, 심지어 이방인까지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으로, 이어지는 백부장의 고백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이로써 예수의 죽으심으로 성전과 성전제의는 의미를 잃게 되었으며,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릴 것입니다.

질문13)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 본 백부장은 예수에 대해서 어떻게 고백했습니까?

마가복음서 저자는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성전 휘장이 찢어지는 상징적인 사건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십자가 처형을 집행했던 이방인인 로마 군대 백부장의 고백을 아주 중요하게 보도합니다.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인이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제일 가까이서 보아 온 결론으로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 예수를 따랐던 무리들과 믿기 위해서 기적을 요구하는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과는 달리, 백부장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단번에 "참으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백부장의 신앙고백은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완전한 표현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써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증되신 것입니다. 이 선언이야말로 마가복음의 핵심을 이루는 말입니다. 예수를 따라다녔고, 이적을 경험한 제자들도 예수에 대하여 명확한 고백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가 그토록 여러 번 제자들에게 소위 '메시야의 비밀'을 당부하셨으나 정작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이방인 백부장에 의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신분이 만 천하에 선언된 것입니다.

질문14) 제자들과 멀리서 예수의 죽음을 지켜 본 여인들의 태도를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느 편 사람에이 더 가깝습니까?

마가복음에는 제자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인들의 모습은 긍정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대조는 복음서의 독자들과 신앙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더욱 충성스러운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을 권고하려는 것입니다. 열 두 제자가 숨어버린 상황에서도 여인들이 도망치지 않고 예수의 죽음(40-41)과 장사지냄(47절)과 부활의 증인(16:1)이 되었다는 사실은, 복음서를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이 여인들처럼 충성스럽게 마지막까지 예수를 따르는 일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타의에 의해서 예수의 십자가를 져다 드리다가 십자가의 증인이 되었고, 처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은 이 모든 과정을 본 후에 예수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사랑을 받았던 어떤 제자도 예수의 죽음에 대한 증인이 되지 못했으나, 다만 주님을 따랐던 여인들만이 이 증인들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겪으셨던 십자가의 죽음은 신앙과 불신앙을 판가름해 줍니다.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은 그 와중에서도 표징을 구하며, 결국 그들의 완악한 마음, 곧 불신앙을 드러냈습니다(32절). 다만 예수의 죽음을 목도한 백부장이 신앙의 눈으로 이 사건을 올바로 보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처형까지 예수에게 일어났었던 사건들을 서술하면서 참 제자직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자만이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제 모든 이방 민족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 당신은 예수를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 15장 21절부터 41절까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십자가의 길, 십자가에서의 처형, 주님의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배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