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익수 교수

예루살렘의 교권주의자들의 외식을 책망하심(7:1-23)

마가복음의 저자는 이방지역으로의 선교사역에 앞서서 이방 지역은 부정하다는 유대인들의 편견에 대해 논박하기 위해 이 단락을 여기에 편집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1-13절에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형식주의를 책망하고 계시며, 14-23절에서는 정결 문제에 대한 대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편집구성을 통해서 참으로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이 어떤 것임을, 동시에 예수께서 장로들의 유전을 비판하시고, 유대교의 유전과 율법을 초월하는 분이심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이 단락이 유전을 범한 제자들의 행동을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예수께서 그들의 유전 자체를 비판하시고, 결국에는 예수께서 이러한 유전들에 폐기를 선언하시는 모습 속에서 잘 나타납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형식주의를 책망하심(7:1-13)

본문읽기

1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 몰려왔다. 2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바리새파 사람과 모든 유대 사람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규례대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정결하게 하기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들이 전해 받아 지키는 규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씨는 일이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하여 준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한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8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9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

본문해석

질문1) 1절에 의하면, 누가 예수께 계속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또 그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마가복음에서 "예루살렘"은 예수를 죽이는 도시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에서는 보수적인 교권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는 표현 자체가 벌써 그들이 예수를 적대하는 자들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3:22절 참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유대교의 대표적인 교권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마가복음 전체에서 일관되게 예수께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도 거부감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헤롯의 잘못은 지적하고 나서지도 못한 반면, 예수께서 다니시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말씀 전하시는 것과 능력 행하시는 것에 대해서만은 사사건건 시비를 일삼곤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내세우는 율법주의나 보수적 태도는 자신들을 정당화 시켜주는 구실과 허울에 불과하고, 사실은 예수의 출현과 사역을 곧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이해했음이 분명해 집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눈으로 본다면, 그들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들일 뿐만 아니라 조상의 유전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통보수주의자들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대인들의 지도자로서 추앙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율법과 조상들의 유전에 대한 충정보다는 자신들의 권위와 지위보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로 보신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과 유전이 잘 지켜질 때 자신들의 권위가 인정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해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교권주의자들이며, 또한 형식적이다 못해 외식하는 자들이라 책망을 받을 만큼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종교계에서도 이와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아픕니다.

질문2)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제자들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 예수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왜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까?

마가복음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문제삼은 대상은 예수와 제자들 중에 손을 씻지 않은 몇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부정한 손으로 떡을 떼었다는 것은 단순히 손을 씻지 않은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비위생적인 행위 자체보다는 조상의 유전에 따라 손을 씻지 않은 종교적 문제로 비화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위생적으로 불결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의적인 관습을 위반한 것과 동시에, 그들의 불경건성을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어야 한다는 종교적 의식(출 30:19 ; 40:13)은 팔레스틴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관행으로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적어도 주전 2 세기에 벌써 많은 유대인들은 자발적으로 제사장들의 정결의식을 따라 아침 기도 전에 규칙적으로 손을 씻었습니다. 이렇게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관습은 씻지 않고 먹는 것은 강력하게 단죄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표적인 장소인 "시장"에 대한 언급은 이방인 혹은 유대 죄인들과 몸을 부딪침으로써 제의적인 부정이 가장 많이 그리고 빈번히 발생하기 쉬운 곳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몸을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은 많은 사본에서 "목욕하지 않은"으로도 발견됩니다. 유대인들은 부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시장에서 돌아온 후에는 언제나 전신 목욕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쿰란의 유적에는 유대인들이 공동 식사를 하기 전에 목욕하였던 목욕탕 시설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질문3)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 무엇을 따져 물었으며, 예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호칭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십시오.

본문에서 "위선자"로 사용된 단어는 원래 '대답하는 자', '해석하는 자', 혹은 '무대의 배우'를 가리켰습니다. 그러다가 배우는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자요, 해석하는 자는 없는 말을 지어내는 자이기에 이 단어는 자연스럽게 '위선자'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질문4)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에 대한 예언으로 이사야서 29:13절을 인용하셨습니다. 그 본문을 찾아 적어 봅시다(6절).

예수께서는 위선자들에 대한 적절한 예언으로 이사야서의 본문을 인용하셨습니다. 이사야 29:13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통박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유전을 따라 사람 앞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마음은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단 한번 나오는 이러한 위선에 대한 예수의 책망은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그들의 실제 생활 사이의 객관적인 불일치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직결된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아주 잘 섬기는 자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위적이고 형식적인 일에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위선자들처럼 입으로만 하는 고백과 공경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공경과 인간의 대한 한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의 관례와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선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부질없는 인간의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져버린 어리석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헛된 구호요, 위선의 몸짓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질문5) 하나님께서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10절), 부모를 업신여기며 부모를 돌보지 않는 위선자들이 자기들의 행동을 어떻게 합리화하고 있습니까?(11절)

자녀가 자신의 재물에 대해서 "고르반"이라고 말하면, 곧 부모들에게 돌아갈 몫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다고 선언함으로써 부모에게 응당 드려야 할 몫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자식의 재물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요구되거나 향유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는 고르반으로 선언된 재물을 자녀는 꼭 성전에 바칠 필요가 없었으므로, 이런 행위는 흔히 달갑지 않은 부모들에 대한 당연한 자녀의 도리를 회피하는 기만 술책으로까지 되었습니다. 이것은 종교를 핑계삼아 인간적인 의무를 기피하고 윤리를 파괴하는 교활한 인간의 발상인 것입니다. 하나님 섬김을 빌미 삼아 부모 봉양을 거부하는 것은 지탄받아 당연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문자적으로 "즉 헌물"(that is, Gift)이라는 뜻으로 마가복음 저자의 친절한 해설입니다. 원래 "고르반"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맹세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인간에 대한 봉사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인간에 대한 봉사를 분리해서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도 하나님 자신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속성인 "선의와 사랑"이 인간사회 속에서도 구현되어야 마땅하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질문6)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고르반"과 같은 유전으로 결국은 무엇을 헛되게 하였습니까?(13절)

모세가 받은 성문율,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말씀이었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이 제정한 고르반 제도를 가지고 결과적으로는 모세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구전율(인간의 율법)이 성문율(하나님의 율법)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좋은 예입니다.

유대 정결예법에 대한 재해석(7:14-23)

① 본문 읽기

14 예수께서 다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무엇이든지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서 그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6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7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 비유를 두고 물었다.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9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무엇이든지,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가 뒤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여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 하셨다. 2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나쁜 생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데, 곧 음행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의과 사기와 방탕과 악한 시선과 모독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다. 23 이런 악한 것이 모두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힌다."

② 본문 해석

'14-23절'은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무엇이 부정한 것이며, 부정하지 않은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해서(14-16절), 이 말씀에 대해서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시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17-23절).

예수께서는 사람의 몸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음식물이고, 몸 안에서 나오는 것은 온갖 악독이기 때문에 인간을 더럽히는 것은 죄의 문제이지, 결코 식물(食物)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제사법전의 정한 음식규례(레 11-15장)를 사실상 더 이상 의미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아름다움, 하나님 창조의 세계의 대한 강한 긍정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질문8)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은 이 비유의 의미에 대해서 예수께 물었습니다(17절). 예수께서는 이 비유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 주셨습니까?(19절)

제자들이 예수께 비유의 의미를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고 제자들의 무지를 책망하셨습니다. 예수 곁에서 많은 말씀을 듣고, 이적을 본 제자들도 듣고 깨달음이 없는 무리들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도, 그토록 함께 지내온 제자들마저 깨닫지 못하는 점을 예수께서 질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깨닫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볼 수 있는 눈과 알아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눈과 귀를 갖지 못하는 한 어쩌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또 그것을 아무리 여러번 해석해 준다해도 예수의 제자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질문9) 구약에 있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규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갖기 쉬운 음식에 관한 일반적인 편견까지도 완전히 부정해 버리신 예수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19b절의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고 하셨다"는 이 말씀은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고 선언하는 셈이고, 구약에 있는 음식의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규례들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때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심되는 주제는 바로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라는 것입니다.

질문 10) 20-23절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즉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21-22절에 있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악한 생각의 구체적인 목록들을 찾아 써 보십시오.

"나쁜 생각" 곧 다음에 나오는 12개의 악덕들은 악한 생각들과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모든 악행들은 악한 생각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음행"은 22절의 "간음"보다 포괄적인 것으로, 성적 부도덕에 관한 일체의 행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탐욕"은 제 10계명이 금지하는 악으로서, "탐하는 행동들", "욕정 어린 행동들"을 뜻합니다. "방탕"은 절제없는 음란스런 행동을 뜻합니다. "악한 시선"은 "선한 눈"과 대조됩니다. 이는 사람에 대한 질시를 뜻합니다. "모독"은 원래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가리켰으나(2:7 ; 3:28), 여기서는 사람에 대한 중상 및 비방을 가리킵니다. "교만"은 '지나치게 자신을 나타냄'이라는 뜻으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나타냅니다. "어리석음"은 '몰지각'을 뜻합니다.

질문11) 이제 당신은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 보십시오.
유대교는 부정을 형식적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옷과 주발에 붙어 있는 것을 구별하며, 부정한 것이 묻거나 접촉되면 부정이 전염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부정한 먼지투성이의 세계로 이해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사람이 먹는 음식물까지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하려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사람의 몸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반면에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모든 부정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임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밖에서 들어가는 음식의 종류나 음식을 먹는 절차에 따라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부정은 사람의 악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러운 손이 인간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생각, 즉 악한 생각이 인간을 더럽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음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규례는 물론이고 특정지역에 대한 편견까지도 통박하신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 우리가 갖고 있는 음식에 관한 편견들에 대하여 말씀해 보십시오

♣ 당신은 음식이나 특정지역에 대한 자신의 편견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비방하신 것은 없습니까?

__. 예
__.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