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눈은 육안(肉眼), 심안(心眼), 혜안(慧眼), 그리고 영안(靈眼)이 있습니다.
첫째로, 육안이라 함은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육체의 눈으로서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만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눈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가 볼 수 있는 눈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관찰력의 차이는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둘째로, 심안이라 함은 자신의 마음이나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의미합니다.
셋째로, 혜안이라 함은 지혜의 눈을 의미합니다. 즉, 지혜를 가진 자만이 볼 수 있는 차원의 눈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안이라 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의 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아동은 유치원생이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사고의 한계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유치원생이 대학원생의 사고를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 말은 유치원생의 사고의 한계는, 대학원생의 사고의 한계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의 한계를 넘어선 개념이나 관념을 생각할 수 없고, 또 그런 문제를 풀어낼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어린아이와 어른의 관계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성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경험과 체험, 학문, 그리고 신앙생활과 기도를 통하여, 그의 사고의 한계를 넓히는 노력을 하였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육안의 차원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눈앞에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밝은 사람은 현실의 생활과 자신의 생명까지도 초월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은 육안 외에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을 소유한 인간이기에 우리는 심안이나, 혜안이나 심지어는 영안이 밝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 영적논리로 승부합시다. 그 방법은 기도입니다. 역시 우리의 영안을 밝히는 방법은 기도뿐입니다. 그 길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