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후 나는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모두들 너무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나는 그곳에 그들의 평생소원인 지하수 개발을 약속 했을 때는 그들은 정말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신바람이 났으며, 마을주민 모두가 힘을 모았습니다.

지하수 개발의 가장 큰 문제는 경비였습니다. 그 경비를 내가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기술자와 자재들이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한지 몇 일만에 수맥을 찾았습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파이프를 수 십 미터 박아 물을 뽑아 올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한 달 정도 걸려 큰 물탱크도 만들고 작은 연못도 만들었습니다.

이제 식수는 물론 목욕, 빨래, 가축들의 식수 등 물 걱정은 모두 해결 했습니다 이 일들은 그들에게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곧 꼬르손이 그들의 생명을 구하러 온 구세주로 부각 되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서 그들에게 마을 회의를 열게 하였고 그 자리에서 나는 목사 이며, 선교를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고 그들은 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간곡히 애원 했습니다. 여기에 교회를 세워 우리 모두 하나님 백성이 되자고……

며칠 후 그들은 꼬르손의 뜻을 따르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곳 양지 바른 언덕 위에 교회를 짓기로 장소까지 결정을 했습니다.

교회 건축은 시작 되었고 나는 물자 공급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교회건물이 한창 진행 중에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웃 동네 청년들이 구아사베에 교회를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무엇인가 일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나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마을 외진 곳에서 나는 이웃 청년들에게 기습을 당했습니다. 내 머리에는 보자기가 씌워 졌고 한쪽 구석으로 끌려간 나에게 매 타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얼마나 맞았는지 그 표현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반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정신은 몽롱 했으며, 내가 죽는 것인지 살 수 있을 것인지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사불성 상태에서 그들은 나의 머리에 총을 들어대고는 나에게 최후의 기회를 줄 테니 이곳을 떠나겠는가? 물었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방아쇠를 당기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죽어 가는구나 생각하면서 한국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 했습니다. 미국에 가면 꼭 한국의 어머니께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멕시코 시골 원주민을 위한 선교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멕시코 선교 이야기를 들려 드릴 때 마다 어머니의 말씀은 부디 몸조심하라, 그러나 아무리 선교가 위험하다해도 돌아 올 생각은 절대 하지마라, 순교정신으로 선교하라, 만약 네가 선교하다가 순교한다면 그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 하겠다.

내가 주님 앞에 가서 아들이 선교하다가 순교했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이며, 그곳에서 다시 만나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경주입실교회) 너의 멕시코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하신 그 말씀이 내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나는 주저할 것 없이 그들에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킨다. 나는 구아사베 형제들에게 이곳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을 했다. 교회가 세워지고 이곳이 복음화가 되기 전 까지는 결코 떠날 수 없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 그들의 얼굴이 아롱아롱 했지만 조용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기도 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고 주님만이 뜻을 아십니다.

주님을 더 잘 알아가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옵소서. 정녕 이곳의 복음화가 주님의 뜻이라면 저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복음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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