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멕시코

멕시코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시대 하에서 반공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당시 멕시코는 미국의 자본주의적 지배가 노골화 되고 있던 1960년대에 농업생산이 한계점에 도달했고 소득 격차가 심화되는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다. 빈곤과 실업자 문제와 농촌을 떠난 도시인구 폭발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으며 그리고 장기간 계속된 독재 정권에 따른 정치적 부패 등으로 인하여 멕시코는 온 나라가 통째로 혼란에 빠져드는 국면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런 혼란 중에서도 한가지 특기할 것은 마테오스 대통령(1657-1964)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쿠바 혁명 정부와 자주외교를 통한 친교를 계속했다. 이 때문에 마테오스 대통령은 자연히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있게 되었다.

그 당시 멕시코 민중들은 무조건 반정부적이며 혁명정신을 상실한 현직 대통령을 불신임했다. 그런데 친쿠바 노선을 고집하고 있던 마테오스 대통령에게만은 민중들이 지지와 호의를 나타냈다. 그때 멕시코 민중의 마음은 마치도 역사의 시계 바늘 역할과 같았다.

그런데 1967년에는 ‘67 멕시코 올림픽’이 멕시코시티에서 진행되었으나 멕시코 학생들과 노동자 그리고 빈곤에 시달리는 민중들은 일제히 이 올림픽 대회를 반대하며 민중들의 단결단합을 시도했다.

오르다스 대통령은 농촌게릴라와 과격 학생들의 데모를 몹시 염려했다. 이 때 대통령은 군대를 총동원하여 민중들의 투쟁을 강압적으로 탄압하면서 올림픽을 불안속에서 겨우 치룰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멕시코 정치풍토는 변화되는 계기가 왔다. 2000년 7월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은 73년의 집권역사를 마감했다. 이 집권 여당은 드디어 제일 야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대선은 중도우파노선을 주장한 폭스가 대통령이 되어 ‘제도혁명당’으로부터 정권을 이양 받았다.

멕시코 혁명의 실과 허는 무엇인가?

멕시코 혁명은 민중들에게 역사를 바로 알게 하는데 공헌했다. 멕시코 국민의 대다수인 혼혈족과 원주민들은 왜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빈곤과 억압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역사의식의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이 70여년이나 장기 집권을 하면서 초심을 망각하였기 때문에 실패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정당은 ‘초지일관’ 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곧 실패로 나타났다.

멕시코는 1986년에 gatt에 가입 했고, 1992년에 북미지역자유무역협정(nafta)에 가입 했고, 이어 1996년에는 미국과 단독으로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입했다.

미국-멕시코 자유무역협정(fta)은 강대국의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멕시코 경제의 75% 이상이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고 종속구조화 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곧 민중들의 의식을 흔들어 주었다. 역사적 견지에서 볼 때 오늘 멕시코의 민중들이 미국에 대하여 당당한 자세를 갖고 반미감정을 노출해 온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제도혁명당’이 완전히 망하고 폭스 대통령의 정권이 극우적 정권으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오늘의 멕시코는 또 다시 미국에 휘둘리는 전형적인 친미예속국가로 전락하고 있는 과정에 있어 이를 바라보는 민중들은 매우 허무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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