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우리 차신성권사님의 소천도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부르심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기도 하나 한편으론 조금 더 사셨으면-하는 아쉬움과 바램을 떨칠수가 없다.

십칠년전, 분당 매화마을의 상가교회 시절에 불도가 심한 홀 시어머니의 눈을 피해 교회를 나오시던 권사님께서는 효심이 깊은 며느리로서의 한평생을 사셨다.

남편을 잃고 어린 외아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우신 시어머니께서는 평생을 진각종이라는 불교를 섬기면서 자신을 바르게 지키려고 몸부림치며 사시던 중 우리 차신성권사님을 며느리로 맞아 엄한 시어머니로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가문의 도를 지키며 사셨기에 차권사님 역시 천생 여자로서 반듯한 인격을 갖추고 계셨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남편을 아들이자 남편처럼 의지하고 사시는 시어머니와 평생을 함께 살면서 겪으셨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며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온다.

한때 청주의 갑부로서 부요한 삶을 사시다가 석집사님의 사업의 실패로 한순간에 모든 재산을 다 잃은 어느날, 도망가다시피 고향 땅 청주를 떠나서 아들이 다니던 회사의 작은 임대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시며 드디어 차권사님께서 처녀 시절에 믿었던 하나님의 품으로 용기를 내어 돌아오신 것이었다.

처음 뵈었을때부터 양반집 며느리의 모습과 자세가 눈에 띄었으며 그때부터의 신앙생활도 정말 모범적으로 바르게 하시며 시어머니와 남편과 자녀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던 중, 우리 차권사님의 폐에 이상증세가 생기자 시어머니께서 드디어 내게 제안을 하셨다. “만일 우리 며느리를 건강하게만 해 주신다면 60년 믿던 진각종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시어머님의 연세가 팔십이 훨씬 넘으신때였다. 지금이 바로 우리 차권사님의 기도가 응답 될때임을 눈치챈 나와 성도들의 중보기도로 깨끗이 치유가 되고 시어머니께서 드디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셔서 그때부터 진각종을 진실하게 섬기던 그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셔서 우리 교회의 권사님이 되셨다.

지금은 96세로 너무 연로하셔서 교회예배에 참석은 못하시지만 정말 끔찍하게 아끼시는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며 생활하고 계신다.

요 며칠동안 며느리가 상태가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중일때, 목소리 한번 듣고 싶다며 아드님에게 간청을 할 정도로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데, 이제 차권사님의 소천소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가 고민이다.

임종예배를 마친 후, 먼저 아내를 하늘로 보내신 김명희장로님께서 석집사님의 손을 잡으시며 “이제 우리 둘이 남은 생애 열심히 주의 일을 하고 살자”며 눈물을 흘리신다.

오! 주여

사랑스런 권사님을 먼저 올려 보내 드리는

제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사랑스런 가족들이야 오죽하겠나이까. 위로해 주시옵소서

(주후 이천십삼 년 정월 넷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