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교회 당시,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 제일 힘든 것이 성도들간의 시기와 질투로 인한 이간이었다.

당시 경기도 용문과 양평에서 일가족 여덟 명이 우리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그들은 당시 교회 여성도의 친정식구들로써 모두 불신자였으며 심한 병과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가족이었다.

그때는 교회 식구가 불과 삼사십 명 밖에 되지 않을 때여서 밤낮 가리지 않고 안수와 심방으로 그 가족과 가까이 지내며 보살펴 준 결과(물론 하나님이 하셨지만) 온 가족이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 교회에 어느 한 가정이 등록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지방에 근무 중이었고 당시 여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목회자인 우리 부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분이었다.

따라서 우리 부부는 이제 이 가정의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데 얼마 후, 교회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확인해 보니 그 진원지가 용문에서 나오는 가족이었다.

목사님이 변했는데 ‘돈을 좋아하는 목사님’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새로 나온 성도 가정이 자기네 보다 좀 더 잘 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부자 성도가 오니까 목사님이 자기네를 외면하고 그 가정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새로 나온 그 가정은 당시 연립주택 반 지하에 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일 년 넘도록 자기네 가족을 위해서 온갖 심혈을 다 기울여서 섬기며 돌본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더 관심이 필요한 성도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 전보다 관심을 덜 쏟으니까 결과가 이렇게 엉뚱하게 나온 것이었다.

결국 그 일로 그 가족과 친척 열댓 명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었다. 당시 나이 사십도 안 된 젊은 나는 너무 허탈하고 억울해서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전 너무 억울해서 속이 상해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며 하소연을 하는데,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게 네 것이냐?”- 이 짧은 한 마디의 말씀에 나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우리 교회를 섬기는 성도가 나도 모르게 내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교회의 성도들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서 어느 정도 자유함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때 내게 들려 주셨던 하나님의 음성을 되뇌며 애써 태연한척 노력하며 여기까지 달려오게 되었다.

오늘따라 봄비가 종일 내려서 일까? 문득 그 간에 함께 했던 옛 얼굴들이 생각나며 그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오! 주여

그간 함께 했었던 그들의 삶을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 바램이 진정한 제 고백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후 이천십삼 년 사월 셋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