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구촌의 이상기후 때문일까? 몇 해 전만해도 겨울 추위를 크게 느끼지 못했었는데, 요 몇 해 전부터 갑자기 겨울이 춥다고 느껴지기 시작 하더니 이번에 보낸 겨울은 정말 유난히도 춥게 느껴졌다.

춥기도 추웠지만 웬 눈은 그렇게 자주 많이 오는지 단독주택에 사는 나로서는 눈과의 전쟁으로 새벽마다 눈 치우는 일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하였다. ‘여보, 이제 우리 이 집을 정리하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 갑시다.

나의 어린 시절,너무 가난하여 손바닥만 한 단칸방에 살면서 자그마한 마당이라도 있는 집에 한번 살아 보는 게 소원 이었는데 이제 한 2년 살아 봤으니 다시 눈 치울 걱정 없는 아파트로 이사 갑시다.’ - 오죽하면 내가 이런 푸념을 다 털어 놨겠는가.

그런데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그렇게 춥고 눈도 많이 오고 도저히 안 갈 것 같았던 겨울이 드디어 밀려나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마저 사랑스런 봄, 드디어 봄이 온 것이었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더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사 가고 싶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자그마한 마당 한 귀퉁이에서 여기저기 피어날 새싹과 꽃들을 그려보고 또 화분에서 자라나는 포도넝쿨 그리고 대추나무와 감나무에서 자라날 푸른 잎들을 생각하니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온 세상은 벚꽃과 백목련, 자목련,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철쭉꽃 등으로 아름답게 물들게 될 것이다. 파릇파릇한 새싹과 함께 쑥, 냉이 그리고 달래 등의 산나물도 지천에 깔릴 것이다.

아마도 올 봄에 피게 될 꽃들은 다른 해보다 더 화사하고 아름답게 실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모질게 추웠던 지난겨울 추위를 이기고 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계절타령을 하며 글을 쓰다 보니 질병과 사업의 부진 등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생각난다.

내가 그들처럼 아파봐야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사업적으로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그들의 여러 가지 고통을 겪어봐야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울어 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채, 마음과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목회자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며 예수님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죄와 각종 저주를 몸소 당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만이 진정한 우리의 구원자이시요 상담자시요 위로자이시다.

이제 새봄이 왔다. 이 봄소식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랑스런 성도들에게도 들려오길 간절한 마음과 소망으로 기도해 본다.

겨울 없는 봄이 없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길 속에도 혹독한 겨울이 찾아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사망과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부활 생명의 꽃을 피우자.

오! 주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올 봄 소식이 함께 들려오게 하소서.

(주후 이천십삼 년 삼 월 둘쨋 주)